브런치는 오랜만에 찾아왔네요.
인스타에 매일 글을 적고 있지만, 긴 글을 적을 수 없으니 답답합니다.
그마만큼 일에 몰입하려고 의도를 세웠지만 쉽지 않네요.
오늘은 오랜만에 뵙는 어르신들과 '결혼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옛 어른들의 말 중에 틀린 말이 없다고 하죠.
세상은 믿는 만큼, 그리고 믿는 대로 보이는 법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신념을 깰만한 일들은 대체로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사회적인 관념(무의식)은 가슴 깊이 담겨 있기 마련이고, 대체로 그렇게 믿는 사람이 많다는 건 실제 현실이 그럴 수 있다는 반증이죠. (내 세상은 내가 믿는 만큼이니까요.)
고집스러운 어르신들의 불요불굴(不搖不屈)이 싫지 않습니다. 답답한 마음도 들지 않아요. 그들의 삶을 존중합니다. 다만 동의하지는 않아요.
자식은 둘 이상 낳아야 한다거나, 이혼은 나쁘다거나, 혼자 살면 나쁘다거나.. 오늘 어르신들과의 대화 주제는 결혼이었으니 남편, 자식, 이혼, 재혼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결혼에 대한 뿌리 깊은 사회적 관념을 어찌할 도리는 없습니다. 심지어 그를 인지하고 있는 저 역시 그 영향을 적잖이 받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장 폴 사르트르는 말했습니다. "인생은 'B' birth와 'D' death 사이의 'C' choice다."라고. 자식을 하나 낳고 못 사는 사람이나, 이혼해서 더 힘들게 사는 사람이나, 혼자 살아 외로움을 겪는 사람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죠.
그렇지만 반대의 경우는 소수라며 일절 생각지 않는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겠습니다. 자식을 하나 낳고도 잘 사는 사람, 결혼 한 번 하지 않고도 잘 살아가는 사람, 이혼하고 더 행복하게 사는 사람, 혼자 사는 사람이 더 외롭지 않은 경우 말입니다.
남 보기 좋게 살아야 한다는, 그 관념 때문에 내가 좋은 삶이 아니라 타인이 좋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과연 나도 좋고 남도 좋은 그런 삶은 불가능한 걸까요? 서로에게 얼마간 희생을 강요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고, 미덕인 걸까요. 제가 참 좋아하는 어르신 중 한 분은, 늘 참고 살며 모든 일을 다 해내십니다. 진정한 슈퍼우먼이세요. 다리가 성치 않으시지만 가족들의 삼시 세끼는 물론, 손주 식구들 반찬도 일일이 모두 해다가 주시니까요. 바람, 도박은 물론 갖은 구박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남편을 건사하셨어요. 그녀가 선택한 삶에 추호의 비난과 실망은 없습니다. 그간의 설움을 이야기하시며 눈시울을 붉히고 피해자 행세를 하시는 것에도 충분히 그 마음을 북돋아 드리고 싶어요.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 선택은 스스로 하셨고, 그마만큼 그 삶을 존중하고 싶습니다. 사회적인 관념이 더욱 큰 시대였으니까요.
일흔이 넘으셨지만 칠흙같이 어두운 새벽 3시 반 공장 청소를 다니시고 집에 가면 종일 밥을 하고 농사를 지으십니다. 고단한 농사일에 추위에도 불구하고 꾸벅꾸벅 졸며 일하십니다. 그럼에도, 이혼은 안된다고 하시네요.
삶에 정답이 있을까요?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고, 세상 모든 관념을 떠안으며 살아간다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요? 결혼에 대한 어르신들의 굽히지 않는 신념을 들으며 많은 생각이 오갔습니다. 내가 만든 감옥에 나를 가둔 삶, 말 그대로 자승자박(自繩自縛)이네요. (기필코 결혼이라는 틀을 깨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을 했으니 잘 살아내는 게 맞죠. 서로 함께 노력하면서요.
다만 기필코 이혼이 나쁜 것이라는 관념으로 살아간다면 그 마음이 감옥이 되어 나를 괴롭히는 수가 있습니다. 혼자 살아가면 늙어 외로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자식이 있기만 하면, 노후는 외롭지 않은걸까요? 사회적인 관념은 물론, 무의식 중에 있는 이런 생각들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현실과 상관없이 말이예요.
남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것은, 남의 인생을 평가하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말해줍니다. 겉으로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 남들 눈에 좋지 않아 보이는 것 그리고 실제 진실과의 괴리가 얼마나 큰지를 알아야겠습니다.
어르신과의 대화 속에 스스로를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