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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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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혜 Jul 21. 2024

뭉개진다

아침편지

비모닝. 일요일 아침이에요.


엊그제 바가지에 담아 쏟아내듯 비가 내릴 때, 차 안에서요. 긴 신호가 걸려 와이퍼를 멈췄어요. 풍경이 유화 그림처럼 뭉개지는데요. 분별이 흐릿해지는 느낌이 마음에 들어요. 내가 울먹이는지, 차가 그런지 싶고요.


가만 보니 유화 그림을 좋아해요. 적당히 뭉개놓은 그림이요. 일곱 살에 미술 학원을 다녔어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언니와 달리 손이 느렸던 저는, 각을 맞추길 좋아하는 선생님 눈밖에 나서요.



"너는 어쩜 이렇게 그림을 못 그리니."


소질이 없니,라고 말했던가. 뒷말은 선명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너는 어쩜 이렇게'라는 고 말이에요. 일곱 살이 맞아요. 마치 가슴을 후비는 느낌이었어요. 비난받는 기분이요.


날카로웠던 그날 이후 점점 미술 시간을 싫어하게 됐어요. 미술 숙제가 있는 날이면 미적대다 언니에게 도움을 구했어요. 자연히 학원도 끊었고요.



덕분에 저는 밖에 나가 돌고,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그것도 일곱 살이네요. 피아노 선생님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럭저럭 다닐만했어요. 손을 동그랗게 오므려라, 손가락 끝으로 쳐라, 모나미 펜으로 손등을 탁탁 치던 게 생각나요. 이제와 보니 선생님에게 결벽증이 있는가, 싶네요. 제 손을 잡아준 적은 한 번도 없으신 것 같아요.



주변에 깔끔 떠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어요. 그래도 내 손 잡아주던 아버지요. 갖은 사업을 하셨더랬어요. 철물점, 정육점부터 리조트 사업에 이르기까지. 화장실 청소를 중요하게 여기셨고요. 먼지 한 톨 허용하지 않으셨어요. 입만 벌리면 우리, 먼지를 먹는 셈인데 말이죠. 무엇보다 아버지에게 틀림이 없던 건 몸을 청결하게 하는 거였어요.



의식의 흐름 따라 어린 시절에 다녀왔네요. 비가 내리면 그래요. 옛 기억이 떠오르죠. 그대가 나인지, 내가 그대인지 싶어요. 창밖이 분명하지 않은 까닭이에요. 구름은 내내 해를 감추고 울먹이고요.



잔잔한 그리움이 한숨처럼 쉬익, 사라지네요. 뒤숭숭하냐면 그렇지 않아요. 바람결이 수선스러워 그래요. 창을 내다보니 나뭇잎이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해요. 규칙 없이 산만해요. 바람이 불면 그럴 수 있어요. 암요.



잘 버텨왔어요. 거센 바람에도 꿋꿋이 선 나무 몸통이 꼭 그대와 같지요. 오늘은 어떤 날인가요? 캄캄한 일요일이라 전쟁 소설을 읽을 참입니다. 레마르크 소설이에요.



괜히 눈 질금, 감았다 떠봅니다. 밖이 어두우니 눈이라도 밝아야지요. ^^ 쉼이 있는 일요일이시길 바라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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