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며 몸에 계속해 손을 대는 친구가 있다. 보통 여성이면 친구끼리 질투하는 마음이 있다지만 나는 대체로 찬탄이 많은 편이다. 곁에 사람에게 예쁘다 말하는 데 아낌이 없다. 그 말을 입에 담을 적에도 진심이 뚝뚝 묻어 나온다. 한데 친구의 성형 소식에 마뜩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언제인지 두 번의 코수술이 있었다.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젠 E컵이라니, 말 그대로 옆에 있기 부담스러운 사람이 된 거다.
바비 인형 같은 친구가 옆에 서면 내 모습이 여간 시골뜨기처럼 보일 것 같다. 질투가 아니라면 이 감정을 뭐라 말해야 할까.
성형에 대해 열린 마음이다. 내가 성형하지 않은 것은 단지 우선하는 가치가 거기 없어서다. 바라는 삶에 충족할 만큼 돈이 차고 넘치면 하다 하다 성형을 할 수도 있을 터다. 실은 인형 같은 얼굴보다 순박한 얼굴을 좋아하는 연유도 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먼저 달려오는 친구다. 결혼하지 않아 책임질 것이 없으니 돈을 어디에 쓰건 타박할 이유가 없다. 곰곰 들여다 보니 내가 불편한 건 인형 같은 친구와 비교당하는 일만은 아니다. 돈에 절절매는 내 모습을 친구에게 투사한 것 같다.
돈은 수단이다. 내가 바라는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도구다. 더욱이 나는 혼자 아이 둘을 책임지는 가장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생각 없이 돈을 쓰는 건 친구가 아니라 나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또 내 마음에 걸려 넘어진 거다.
글을 쓰기는 질투로 시작했지만 이건 내 생활 전반에 대한 죄책감과 수치심이다. 나는 이재에 밝지 않다. 그래서 또 많이 벌 수 있었지만 줄줄 새고 보는 일이 많다. 알면서도 막지 않았다. 이런 자세 역시 개똥 철학에 기반한다. 필요한 돈은 언제고 채워졌다. 다시 나간대도 관계없었다. 또 벌면 그만이니까.
어떻게 살아야 눈을 감을 때 후회하지 않을까, 하여 자칫 욕망에 허우적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필요한 물건이 늘거나 집이 어질러지면 섬뜩한 마음이다. 생각 없이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다. 이 삶의 목적을 소유가 아닌 체험에 둔다는 것은 이토록 어렵고 위험한 일일까.
친구의 가슴 성형 소식에 도리어 내 가슴이 흔들거린다. 그녀와 내가 다를 게 뭔가. 나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 있는지를 돌아본다. 바쁘게 할 일이 많대도 오늘은 좀 더 집을 비우고 정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