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가 넘어 쓰는 글이라니.
새벽 명상을 지속한 지 3년이 넘어간다. 이 시간은 내겐 캄캄한 암흑이다. 뭐, 예외는 있는 법이니까.
슬픈 게 당연하다. 뭐가 됐든 잘된 일이다. 영혼이 바라는 대로 된 게 아닌가. 집착의 대상이 되는 건 유쾌한 일인 동시에 에고를 강화한다. 누군가는 잘잘못을 읊어댈 수 있다. 이해하고 공감한다. 변명이 아니라, 멋대로 한다면 모를까. 정말은 '혼자' 결정하는 게 맞긴 할까.
욕망하고 욕망당한다. 세상은 거울이다. 누구 하나 다르지 않다. 마치 서로가 서로를 그림 그리는 것과 같다. 수월하게 살 것 같음 하지 않을 결정을 그녀는 쉽게도 하는 듯 보인다. 자책이나 원망은 부당하다. 나도 그녀를 말릴 수 없다.
슬픔을 나무랄 수 있을까. 이토록 아픈 걸 보면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지 모른다. 지금에 이른 모든 게 합당하다. 삶을 살아야 하니까.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언제든 잎이 저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누군가가 하는 것 같지만 삶이 한다. 그녀는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 무언갈 더 바라는 것은, '지금에 삶이 없다'는 고백과 다르지 않다. 삶은 지금 뿐임을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슬픔이 흘러가는 느낌을 관찰한다. 파도가 철썩, 오르면 내려 친다. 한껏 올라붙은 뒤엔 자취를 감춘다. 붙들고 싶어도 소용없다. 똑똑히 바라보면 명백하게 파도가 오르내리는 것을 반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죽음 앞에서 미련이 남는다면, 이 밤처럼 어기적댈 것이 분명하다. 슬픔이든 고통이든, 기쁨이든 '그것'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다면. 어떤 이유든 막아서고 둘러댔다면 아마 지금처럼 궁상을 떨겠지.
마치 덕지덕지 살을 붙이고 무겁게 살아가는 것과 같다. 몸이 뒤뚱거릴수록 삶에 의욕은 줄어든다. 감정이 더덕더덕 붙으면 어쩐지 쉽게 눈을 감지 못할 터다.
재차 오르내리는 파도처럼 감정은 삶을 올려치고, 또 바위 위에 허옇게 부서지려나. 할 수 있는 건 파도를 느끼는 것, 파도가 내가 아님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생생하게 두 눈을 뜨고 마주 보겠다. 이 슬픔이 지나가는 자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