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쓰레드라는 sns를 좀 하고 있다. 새끼 고양이 올린 사진에 모르는 이가 말을 걸어왔다. 요지는 동물복지 후진국인 대한민국에선 고양이를 교배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발끈하는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이 집안 터줏대감 고양이 두 마리도 유기묘다. 그 분처럼 확고한 건 아닌데, 어쩌고 보니 데려다 키우게 됐다.
태어난 고양이도 세상과 인연이 있어 나오지 않았겠느냐, 답글을 달았다. 그분은 교배가 어째서 인연이냐고 물었다. 논리대로라면 나 역시 개체수가 많은 인간 아닌가.
모든 고양이가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라고 보는 모양이다. 인간의 관점에선 '버림 받는' 고양이, 또 버림 받는 사람이 있다지만. 살 놈은 살고 죽을 놈은 죽는다는 생각이다.
발끈할 사람이 많겠다 싶다. 말하고 싶은 건 아무렇게나 키우자거나, 마음대로 버리자는 게 아니다. 마치 세상 모든 생명을 책임질 수 있다는 듯 말하는 오만함에 대해서다. 나는 내일 '버려지더라도' 이 세상에 태어날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자의로 대한민국 여자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나도 고양이처럼 우연찮게 살아 있는 셈이다.
우리 집은 흔한 시골집이고 딸을 원치 않았다. 딸인 줄 알면 떼어버렸을 거란다. 마지막까지 아들인 줄 알았던 게, 초음파 기술이 없었던 시절이 나를 살게 했다.
태어나든 죽든 그것은 삶이 하는 게 아닌가. 모든 오고 가는 것은 인연이라. 지킬 수 있다는 것도 오만이고 인간이 '버린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만이다. 제멋대로 굴어봐야 삶은 삶이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옳고 그름에 서는 순간 세상은 문제가 넘쳐난다.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기 마련이라. 악을 잘라 없애리라는 투지로 불태운들 어둠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 기준에 옳지 못한 일에 맞서더라도 그 자체로 이유가 있음을 알고 싸우는 게 지혜가 아닐까 싶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옳은 건 없다는 것을 아는 건 자기 자신과 세상에 자유를 선사한다.
날이 궂은 건 내 탓도 네 탓도 아니다. 세상에 고양이가 넘쳐나고 사람이 미어 터진들 그건 문제이면서, 문제가 아닌 거다. 나는 매번 틀리지만 삶은 틀리지 않다. 지금 이대로가 정답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