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 고딘 <린치핀>을 읽었습니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

by 하민혜

◎저자 : 세스 고딘


◎발행일 : 2019년 12월 28일


◎출판사 : 라이스메이커



평범한 톱니바퀴로 끝날 것인가,

작지만 강한 린치핀으로 거듭날 것인가.



책은 사회가 우리를 말 잘 듣는 톱니바퀴(노예)로 만들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 왔다는 폭로로 시작된다. 튀지 말 것, 질문하지 말고 순응할 것, 안정을 추구할 것, 자신을 깎아 끼워 맞출 것.


'학교는 미래의 공장(회사) 노동자를 가르치고 훈련한다. 소비의 힘이 사회적 성공을 인증하는 척도라고 가르친다.' 90p


나에 대한 성찰이 끊임없이 일어나면서 사회 시스템에 대해 역행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이를테면 아이들 사교육을 하지 않는 것, 회사를 그만두는 것 등이다. 가만 나를 보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랑하는 삶에 큰 가치를 두고 있었다. 이에 대해 돈이 얼마나 드는지 따져 보니 하루 1만 원이 채 들지 않았다. 값비싼 옷을 입거나, 먹는 데에 돈을 쓰는 일은 억대 연봉을 하던 때에도 하지 않던 일이라 어렵지 않다.



일을 내려놓고 마주한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버려진 느낌, 무쓸모 무가치였다. 다 수용하진 못했지만 내가 스스로를 얼마나 존재로서 가치 없다 여기는지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옷을 다 벗은 날 것의 나를 마주한 느낌이다. 소장이라는 갑옷, 돈을 잘 번다는 커리어 우먼의 이미지가 꽤나 큰 보호막이었던 것이다. 나 역시 사회의 톱니바퀴로서 뭔지 모를 갑갑함을 느끼며 더 많이 성취하고, 더 많이 소유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 살아가는 줄 알지 못했다. 내가 주고 싶은 것은 사랑이지 돈이 아니라는 것도.



'예술가란 예술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더 많은 사람을 바꿀수록, 사람들을 더 많이 바꿀수록, 더욱 훌륭한 예술가다. 예술은 기술과 무관하다. 물론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한도 안에서만 기술은 의미가 있다. 기술과 기교는 예술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요소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예술은 꾸밀 필요가 없다. 그것을 활용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한도 안에서만 유용하다.
그림, 조각, 작곡이라고 해서 무조건 예술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예술이 아니다. 어떤 감흥도 느낄 수 없다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169p



사랑의 결과로 한 생명이 창조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결국 존재의 목적은 창조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에서 주어지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을 피해 시스템에 나를 욱여넣고 살아갈 때, 우리가 느끼는 갑갑함은 다름 아닌 존재로서의 목적을 잃은 데에 있다. 책은 대체로 이 것 아니면 저 것으로 사람을 나누는 편이지만, 나는 사람 모두가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아이폰을 만들어 낼 필요는 없다. 아이폰이 아이폰이기 위해 수많은 아이폰이 아닌 것들이 필요한 것처럼.




나의 창조가 꼭 아이폰처럼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어마 어마한 돈을 가져다 주진 않을 것이다. 대다수 우리의 아이들이 평범하듯이. 다만 나에게만큼은 창조한 존재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애완동물을 키우고, 그림을 그리고 요리를 하고, 레고 조립을 즐기거나 하다못해 게임에 빠지는 사람이 그리 많은 이유가 무얼까? 단순히 재밌는 일이라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답은 창조에 있다. 교육으로 인해 또 두려움으로 인해 늘상 창조의 통로를 막고 살아가기 때문에 어딘가로는 그를 해소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삶의 맛이 없다. 본질을 잃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그렇게 입에 담는 순간 그것이 더 현실이 되는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도 없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그토록 매달린다. 다른 사람의 지도를 따르면 그러한 지도가 잘못되었을지라도 자신의 실수가 아니기 때문에 그토록 매달린다.'
243p



두려움 그 자체가 이미 존재에 대한 책임 회피다. 기필코 마주할 죽음에 대해 숙고하고, 내가 왜 사는지를 명확히 하지 않은 데에 대한 죄책감이 내 안에 숨겨져 있다. 물어야 할 것을 묻지 않고 앞만 보고 바쁜 듯 살아가는 내가 못내 짜증스럽다. 원하는 삶을 펼치겠다는 포부는 어느새 다른 이를 핑계 삼아 접고 말지만, 실은 기껏해야 시간 낭비와 자책, 타인의 비난 등이 두려운 것이다. 세스 고딘이 말하듯 그리고 우리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듯 시간은 가고 있다. 언제나. 어느 순간에도.




'저항은 어떤 놀라운 일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저항이 지금까지 차곡차곡 보관해 놓은 변명 목록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중략>... 변명을 제거하고 맞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언제나 또 다른 저항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286p



저자는 저항이 일어나는 이유를 역사에서, 본능에서 가지고 온다. 심리학 책이나 타 자기 계발 서적에서도 익히 보았던 개념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 있어 일어나는 마음을 대체로 좋아하지 않는다. 포기해야 할 이유, 상황에서부터 심지어 몸 상태까지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얼마든지 우리의 뇌는 낯선 도전을 펼치지 않는 데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저항을 이기는 방법,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이야기했는데 감정을 싸워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책은 450 페이지 가량 제법 방대한 내용이지만 한 구석 글귀에서 나만의 해답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난기류를 이기려는 노력을 멈추고 공중에 머물며 흔들리는 느낌을 즐기기 시작했다. 비행기를 타는 것이 훨씬 더 즐거워졌다. 비행기를 공중에 떠 있도록 하는 데, 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273p



창조의 삶을 살아가든 하루 중 대부분 돈을 좇으며 살든 삶에 폭풍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든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힘겹게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산다 해도 마찬가지다. 모로 돌아가도 죽음에서 만나는 것처럼 우리는 분명 삶의 난기류를 만날 것이다. 늘 회피하는 삶을 선택했던 사람은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을 때 심하게 낙담하고 생을 포기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에 더해 지금까지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크기만큼 억장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나로서 살지 못한 세월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물론 그마만큼 의 큰 일을 겪지 않는다면(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아마 가족을 포함해 주변 사람들에게 못내 짜증을 내며 남은 생을 버텨나갈지 모른다. 실은 스스로를 못마땅해하는 줄 모르고, 주변을 욕하면서 말이다. 이마만큼 글을 쓰는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나는 더 이상 어떻게 살아야 한다거나 사회적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할 힘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나 스스로도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소한 내가 지키려 노력하고 있는 것은 강요에 의한 삶을 더이상 살지 않는 것, 당연하다고 여겼던 많은 것들에 의문을 갖는 일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최근에 겪는 일들과 맞물려 마침맞게 세스 고딘의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삶에 고민이 많은 분들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나는 전혀 다른 고민인데?'라고 하더라도 모로 돌아가나 이곳에서 우린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그리고 나는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자발적인 선택으로 살아가는지. 강요된 느낌으로 살아가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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