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내 편이 되어주는 이야기들

정여울 <문학이 필요한 시간>

by 하민혜


◎저자 : 정여울


◎발행일 : 2023년 1월 5일


◎출판사 : 한겨레 출판




'이토록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불안의 시대에야말로 한 사람의 영웅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의 또 다른 영웅적 용기를 이야기하는 문학의 언어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30p



대한민국의 빠른 발전은 우리에게 골이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성취하고 나아가는 것이 최우선인 세상에 느리거나 멈추는 것은 죄악인 듯 느껴지는 현실은 우리의 시간을 앞으로 빨리 감기하고 있다. 빠름은 느린 자살이라는 정여울 작가의 말에, 그 울림의 진동을 가슴 깊이 느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는 것은 생명을 자르는 일과 다르지 않다. 기필코 스스로 일어나질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삶의 유한함에 대해 맞이해야만 하는가.




얼마 전 지출을 줄이고자 하는 노부부를 만났다. 15억이 넘는 집 한 채를 소유하고 있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물려주고자 전세를 준 상황이고, 그들은 그 돈으로 작은 집에 전세로 살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다만 생활고에 시달리는 그들의 흔들리는 눈빛을 마주하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들은 분명 15억이 넘는 집을 한 채 가지고 있지만, 삶은 15억의 빚을 지고 살아가는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서울의 30억이 넘는 아파트가 지방 소도시의 아파트와 모로 보나 내 눈엔 다를 게 없다. 두 아파트 모두 지은 지 10년 이내라는 점, 사는 데 불편함이 없을 만큼 갖춰져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사회가 내세우는 기준에는 이해가지 않는다는 것 즈음은 알고 하는 말이다. 과연 그런 성취야말로 우리의 삶 전체를 흔들 만큼 중요한 문제일지를 생각한다.




평생을 결핍으로 살아가며 삶을 갈아 넣어 손에 쥔 아파트. 의도와 상관없이 아들의 손에 넘어가는 일이 반드시 좋은 일일지는 알 수 없다. 대부분 사다리에 오르듯 경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 홀로 반대 방향을 걷는 것은 어렵다. 당연히 노력하고 사는 게 맞지 않는가 의문조차 갖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방랑자가 되고야 만다.





'시계와 화폐로 계산되는 크로노스의 시간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 마음에 따라 얼마든지 빛깔과 향기를 바꿀 수 있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아이들의 장난감처럼 마음대로 주무를 때 우리는 비로소 시간의 주인이 된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세속적인 관점에서 효율적이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오직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다. 남들에게는 흘려보내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안에서 내가 완전히 행복하다면 향기로운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235p



정여울 님의 문학 사랑이, 삶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가슴 깊이 따숩게 다가왔다. 만나는 모든 순간을 문학 작품으로,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키는 그 눈빛이 아름답다. 길을 따라 걸어가며 나는 내내 울고 웃음 지었다.




"가련한 소녀야, 왜 그런 무서운 방법으로 최후를 맞이하려 하는가? 지금까지 수없이 신들의 보살핌을 받은 그대가 이제는 두려움에 빠져버렸구나."
'<변신 이야기>에서 이 대목을 읽는 순간 그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이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 생생한 현실감을 느꼈다. 그건 아마도 신화를 통해 생의 아름다움을 전하려 했던 이야기꾼의 목소리가 수천 년의 간극을 뛰어넘어 나에게 도달하는 순간의 감동이 아니었을까.'
101p



프시케가 절벽에 뛰어내리는 순간을 그림 그리듯 읊어준 글귀 때문이었을까. 나 역시 작가님처럼 가슴에 이 글귀가 울려 퍼졌다. 뜨거워진 것은 가슴만이 아니라 눈시울이었다. 점차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프시케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하데스에 가기 위해 절벽 끝에 섰다. 하데스에 가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그녀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 순간 형체 없는 목소리가 그녀의 두려움을 읊어주는 대목이다.



나는 어떤 부분에 억장이 무너져 내렸을까. 지난 삶을 형체 없이 마무리 짓고 싶었던 그 순간이 떠올랐던 걸까. 나와 상관없는 그렇다고 모르는 것도 아닌 이가 1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는 가족의 꿈속에 나타나 자신이 죽으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하고 억울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양껏 술에 취해 장롱에서 기다란 목도리를 꺼내 옷장 끄트머리에 걸고 매달렸던 그 모습이 마치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삶을 살아낼 용기를 잃고 두려움에 잠식되어 생을 끝내려 할지 모른다. 이 글을 쓰는 지금에도 가슴이 아려온다. 목도리를 두른 것은 나의 몸이 아님에도 이상하리만치 목 언저리가 갑갑하게 조여 온다.



'아름다움 따위는 느낄 시간이 없어, 문학이나 예술의 향기 따위는 감상할 여유가 없어' 그렇게 나라는 존재를 향해 다가오는 모든 세상의 빛을 흡수하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반사하고 있었다. 사랑이 다가와도 '사랑할 시간 따윈 없다'라고 생각했고, 친구가 다가와도 '우정 따위 키울 시간이 없어'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면서도 사랑에 내 전부를 던지지 못했고, 벗을 그리워하면서도 벗에게 마음을 완전히 열어 보이지 못했다.'
89p



나는 감성적이지 않다.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에서 본래 감수성이 예민하고 눈물이 많은 성격이란 이야기를 듣고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문학이라는 구멍을 빌미로 숨을 쉴 만큼의 여유도 주지 않을 만큼 나를 몰아세우며 살았다. 이따금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지만 냉소적이고 냉정한 엄마처럼 나를 다뤘다. 가족을 포함해 아무리 가까운 사람조차 내가 화내는 모습,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없었을 만큼 철저했다. 실은 그게 힘든 줄도 모를 만큼 무감각했다. 손에 드는 책은 대부분 자기 계발 서적이었고 소설을 읽지 않았다.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지도 않았다. 나약한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 내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별거와 이혼으로 삶이 무너져 내린 순간부터다.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아이 둘이 생기고부터 나는 아주 조금 눈물이 많아지고, 웃음도 많아졌었다. 그리고 그를 빼앗길 순간이 오자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으로 모자라 존재 자체가 소멸되는 아픔을 느꼈다. 그 일을 지나오며 삶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많이도 성찰하고, 나 자신의 아픔도 돌아보았다. 나를 도닥이는 일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때가 전환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친구가 나에게 뭔가를 감추고 이득을 취한 것을 알게 되었다. 가까운 사람이나 일과 관련된 사람들이 보면 화를 낼 수 있을만한 일이었다. 이전 같으면 무미 건조하게 대응했을 것이다. 한데 그날은 달랐다. 나는 그날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심지어 그 친구에게 전화해 가슴이 아프다고 마음을 건넸다. 이득을 떠나 나와의 관계를, 친구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지 않는 그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나로서도 이런 내가 참 생경스럽다.



'문학하는 마음은 어떤 장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사람을 어루만진다는 믿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당신이 아름다운 말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면, 당신은 오늘 문학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따스한 언어로 누군가에게 깊은 위로를 받았다면, 그는 당신에게 문학이라는 선물을 듬뿍 안겨준 것이다. 문학은 어디에나 있다.'
225p



만나보지 못한 문학이 많다.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정여울 작가님의 따스한 빛을 따라 한 작품씩 만날 날들에 부쩍 가슴이 설렌다. 꺼내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들, 무책임하게 버린 나의 감정들을 그들의 이야기로 먼저 만나보려 한다. 나는 지금도 조금씩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고 사랑하는 연습을 한다. 그것은 억지로 바꿔놓은 나를 본래의 나로 돌리는 일이므로.



매거진의 이전글세스 고딘 <린치핀>을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