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게 바라는 것

이두온의 <러브 몬스터>를 읽었습니다

by 하민혜

이따금에 누군가로부터 생각지도 않은 책을 받을 때가 있다. 아마도 선택하지 않았을 법한 제목이었다. 이두온 작가의 <러브 몬스터>를 읽었다. 읽는 내내 무척 불편했고, 문득에는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 채 재차 읽었다. 광기 어린 그들의 사랑이 지난 나의 사랑을 떠올리게 했고 못내 수치를 느끼는 나를 발견했다.


끝내 파국에 이른 겁이 많은 오진홍과 왜곡된 시선을 가진 허인회, 비겁한 오진홍이 결혼 이전 사랑했던 이혼 여성 염보라 그리고 그의 딸 지민. 나르시시즘의 끝판왕인 수영 강사 조우경이 얽히고설킨 스토리이다.


"인회는 거칠고 무성한 수풀에 들어가 해가 지는 것을, 산이 깊은 적막에 휩싸이는 것을, 무력하고 작은 짐승들이 황급히 어둠으로부터 몸을 숨기거나 간헐적 비명을 질러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인회 역시 힘없고 작은 짐승이었지만 몸을 숨기기에는 지나치게 컸다. 인회는 거친 숨으로 몰아쉬며 푸른빛에 드러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상황에서 몸을 드러내고 있다 보면 그것을 혐오하게 된다. 아니 튀어나온 가슴과 드러난 성기를 두려워하게 된다. 인회는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발가벗기는 게 최악의 처벌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안 걸까.
인회는 자신의 삶이 늘 그런 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이 없어서 버려진 자루를 뒤집어쓰기에 급급한 삶. 한번 옷을 잃고 나면 자신에게 맞는 옷을 되찾기가 쉽지 않아서 포대 따위에 연연하게 된다. 그저 배가 고픈 사람이 된다. 검은 산을 헤매는 사람이 된다. 사랑에, 아니 사랑의 진위에 왜 그렇게 집착하느냐고 묻는다면 사랑을 하고 사랑받는 사람은 그렇게 아무 포대나 걸치지 않아도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74p


'사랑'을 받아본 일도,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도 없는 가여운 '허인회'는 허기가 극에 달한 짐승처럼 앞뒤 분간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글에 종종 비치는 그녀의 어린 시절과 결혼 생활은 그가 얼마나 외로움과 두려움에 시달렸을지 절절히 드러내 보여준다. 그런 사람과 어울리는 상대는 누구일까. 안타깝게도 사랑을 줄 수 없는 지독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글에 그의 남편 '오진홍'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상황이 있을까 싶다.


"바쁜 철이 지나고 허인회가 서재에 갔을 때 허브는 말라죽어 있었다. 책상 귀퉁이로 옮겨진 화분은 떨어질 듯 위태로웠다. 허인회가 서재에 있던 오진홍에게 물을 단 한 번도 주지 않은 거냐고 묻자, 오진홍은 너 때문에 화초가 죽었다고 성을 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허브가 죽을까 봐 전전긍긍하면서도 물을 주거나 죽은 화초를 치울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두려워 시야 밖으로 밀어내고 허브의 생명이 얼른 끝나버리길 기다린다."
148p






장장 10년을 이어간 불륜에 지친 건 뜻밖에도 오진홍의 아내 허인회가 아니었다. 암에 걸린 염보라를 내팽개친 비열한 콩벌레 같은 오진홍이다. 불륜의 말로에 널뛰기처럼 분노가 일은 사람은 버려진 염보라가 아니라, 본처인 허인회였다. 그녀는 그들의 사랑을 사랑했다. 사랑에 대한 어떤 기준도 가지지 못한 그녀는 불타오르는 그들을 보며 열분을 이기지 못했지만 한편으론 염원했고, 사랑의 승리를 빌었다. 한 줌도 남지 않은 자신의 존재를 슬퍼하면서도 사랑의 위대함을 믿었고 그런 그들이 고작 죽음의 두려움 앞에 무너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한 편 자신을 죽음까지 내몰았던 나르시시스트 조우경에게 필멸의 사랑을 느낀 그녀는 스스로를 한껏 태우며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하필이면 비열한 엄진홍이었던 것도, 머리가 돌아도 한껏 돌은 조우경인 것도 그 나름의 이유가 분명했다.


소설은 끝을 향할수록 우리에게 '사랑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며칠이 지나도록 그들의 잔상이 맴돌아 입술 끝이 간지럽다. 비뚤어진 사랑의 말로는 주변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미저리 같은 교주 하나가 이야기 중심선상에 나타나는데 이 즈음되면 책에서 다루는 사랑이 흔한 남녀 간의 사랑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성에게 그리고 부모, 종교에까지 인간이 바라는 '구원'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과연 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있는가. 무엇인가가 나를 건져 올려줄 것이라는 믿음, 심지어 너를 구할 수 있을 거라는 교주의 말로는 참담하다. 구원을 받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일생을 던지는 그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지, 도대체 우리가 사랑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사랑에 대한 갈급함이 들 때, 이별을 했을 때, 흥미진진한 소설에 흠뻑 빠져들고 싶을 때, 나의 옛사랑을 돌아보고 싶을 때 이 책을 만나 자화상을 그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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