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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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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혜 Oct 16. 2024

오늘 나는 이곳에 여행을 왔으니

아침편지

안녕요. 늘 새로운 새벽입니다. 잘 잤나요? 제 눈앞은 덮개를 씌운 듯 선선하게 수증기가 일고 있어요. 들끓는 게 무언지 유심히 바라봅니다. 옆으로 구불구불한 물가가 있어 안개가 잦아요.


좋은 세상이에요. 유튜브를 볼 새가 없어도 음악을 틀긴 해서요. 연한 잎 위로 구르는 빗소리를 듣고 있어요. 어려서 놀던 숲에 들어가 앉은 기분입니다.


여행을 많이도 다녔던 때가 있었어요. 만일 그 시절에 인스타든 블로그든, 또 유튜브를 했더라면 여행 협찬을 받았을 거예요. 이곳저곳 때 없이 다녔습니다. 살기 위해 여행을 가는지, 여행 가기 위해 살았는지 싶어요. 틈을 찾아 벌려 시간과 돈을 써댔습니다.


유럽 어디로나 미국으로나 발길 닿는 대로 나다니던 마음엔 방랑끼가 있을 거예요. 제일 큰 까닭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였어요. 이곳 아닌 다른 곳에 이상향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어 그대로 행동에 옮긴 겁니다.


한두 달씩 다니는 걸 선호했어요. 멀리 떠나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하민혜'와 삶의 문제가 작아 보였어요. 눈치 보고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떼어내는 식이에요. 그도 그럴 것이, 먼 이국 땅에 이방인 아닙니까. 대개 일상을 사는 이들 옆에 철저히 유별난 존재였으니까요. '여행객'으로의 삶을 누린 겁니다.


돈이 없어도, 있어도 옷이 허름하든 화려하든 신경 쓰이지 않더라고요. 친절하기만 했습니다. 타인이 미소 지으면 나도 행복하니까요. 다시 볼 사람들이 아니라 도리어 뜻 없이, 바라는 바 없이 상냥하기 좋았어요.


아이를 낳고도 방랑병은 그치지 못해서요. 도피하고 싶은 마음, 떠나고 싶은 마음은 늘 함께였어요. 특정한 상황이 점화선이 되면, 작은 불씨였던 그 마음이 활활 타오르는 격이에요.


이젠 정말이지 잠잠한데요. 물리적으로 일상과 멀어야만 느낄 수 있었던 해방감을 지금, 이 자리에서 느끼곤 합니다. 명상 때문만은 아니에요. 물질의 풍요도 아닙니다. 한 발 떨어져 나를 관찰하는 능력을, 문제에서 도망가지 않고도 그걸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여전히 새로운 풍경과 여행을 좋아하지만요. 낯설게 보는 것은 나 자신과 매일 마주하는 풍경에도 가능한 것을 이젠 잘 알아요. 순간순간 이방인과 같은 느낌을, 지금 여기에서 만납니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가는 거예요. ^^


비행기에서 아래로 땅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어젠 고군분투라 말했지만 오늘은 아웅다웅이라 말하고 싶어요. 지금 우리, 문제가 없다는 거 아니에요. 조금만 멀리, 더 크게 바라보시길. 어떤 여행이든 떠날 줄 알면 심각하기보단 말랑해집니다. 오늘 그대의 지구별 여행이 즐겁고 행복하길 바라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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