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커피

지치지 않는 아이들

by 하민혜

아침 딸아이에게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났다.

좀체 분노를 느끼지 않는 나로서는 이 표현이 가장 적절하지 싶다. 발단은 어젯밤부터였는지 모른다.

첫째인 딸과 연년생인 아들은 늘 같은 연유로 다툼이 시작된다. 늘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로서는 넌덜머리가 나는 때가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매번 똑같은 상황이다. 결론도 어쩌면 한 치의 오차가 없다. 딸은 첫째라는 권력을 남용하며 둘째를 마구잡이로 다그치거나 때리는 식으로 심판한다. 다행일지 그나마 여자애라 기껏해야 손바닥으로 몸통을 내리치는 정도이지만. 문제는 분노에 휩싸이는 순간은 어른이고 애고 할 것 없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나 애들 아빠가 그만해라고 이야길 해도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 귓전에 조금도 가닿질 않는 것 같다. 어제 소소한 다툼이 있었고 여지없는 딸의 심판을 꾸짖고 있었다. 다툼이 나기 시작하는 이유는 보통 둘째 아이의 장난이기 때문에 딸은 늘 억울함에 휩싸인다. 어제는 그 억울함이 더욱 컸던 날이다. 둘째의 장난은 이따금 지나치기도 하지만, 단순히 예민한 딸의 신경을 건드린 죄몫으로 처절하게 다그침을 받기도 한다. 그만하라는 말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찰싹찰싹 동생을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순히 울음을 터뜨려야 할 둘째는 웬일인지 "말로 해!!" 하며 소리를 지르는 것도 모자라 옆에 있는 베개를 집어던졌다. 전쟁이다. 딸이 베개를 맞고 가만있을 리가 없다. 이 즈음에 내가 끼어들었다.



"그만해 서연아 윤우가 말로 하라잖아."

"쟤가 베개를 던지잖아! 쟤나 말로 하라 그래!"

"그래 그렇지만 서연이가 먼저 때린 거잖아. 엄마가 때리는 건 안된다고 했어."

"아니 그럼 날 건들지 말던가!!"


눈물을 펑펑 쏟는다. 이 아이는 왜 이렇게 억울할까? 그저 차별을 당한다고 호소하며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돌아보지 않는 일상에 짜증이 올라온다. 한참 울며 호소하는 딸을 달래며 진정시켰다. 나중은 웃음으로 마무리했지만 나는 나의 감정을 돌볼새 없이 잠에 들었다. 아침 일어나 등교 준비를 하는데 딸이 유독 꿈지럭 거리며 말을 듣지 않는다. 밤새 버려진 감정들이 스멀스멀 새어 나온다.


"엄마가 열 번은 옷 입으라고 이야기한 것 같은데, 왜 옷을 안 입지? 이러다 늦겠어."

"응 알겠어."


건성으로 대답하며 방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들어가 보니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고 있다.


"서연아!"

"알았다고요"


오늘따라 학교엘 가기 싫었는지 모른다. 한 주의 중간 즈음이니 회사 가기 싫은 나처럼 그런 마음이 들었던 건지 그 감정은 잘못이 없다. 문제는 나였다. 툴툴대며 방에 엎드려 있는 모습, 현관 앞에 잔뜩 삐친 얼굴로 서 있는 딸을 보니 어제 눌러둔 감정이 폭발하고야 말았다.


"표정이 왜 그래?? 학교 갈 준비하라는 게 엄마가 무리한 걸 요구한 거니?"

"엄마가 억지로 그러잖아!!"

"억지로 뭘 했는데? 옷 입으라는 게 억지로 뭘 한 거야?"

"...."

"네가 학교 가기 싫을 수 있어. 그걸 나무라는 게 아니야. 엄마 말을 듣지 않고, 배려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나는 거야. 지금 마음이 안 좋으니 나중에 이야기하자. 서연이도 생각 좀 해보고."







아이들을 보내 놓고 가만히 앉아 불안에 떨었다. 이 불안은 어디서 온 거지? 죄책감?

가만히 딸에게 화가 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려 했다. 딸은 필요할 때에만 엄마를 찾고 이기적이다. 온통 허용하고 사랑만 달라는 딸에게 화가 난다. 그 마음 그대로 끄적이며 써 내려가다 보니 눈물이 줄줄 났다.


'내게 좀 더 귀 기울여 주면 좋겠어.'

'나를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해야 할 일은 하면 좋겠어'

'감언이설 따위 않으면 좋겠어'



감언이설에 대해선.. 아예 없으면 서운할 듯하다. 이건 행동은 아니면서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마치 무언갈 얻기 위한 마음처럼 느껴질 때를 말한다.

자기 확언이나 자기 위로는 이따금 하던 대로 지속하기로 한다. 하지만 여지없이 내가 나의 내면을 이용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점에 대해 내가 상당히 불쾌해하고 있다는 것도.


마음에 귀 기울이기 그리고 내면을 방해하지 않기, 해야 할 일이라고 하는 일만큼은 성실히 해 나가기. 구체적으로 방법들을 적고 보니 여전히 나는 나에게 귀 기울이지 않고 이따금 감언이설로 나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잘하고 있어' '충분해' 따위의 말들을 스스로에게 뱉는 그 순간의 진심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솔직하게 나를 믿지 못하면서 믿는 척하는 것,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다 하더라도 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딸은 오늘도 내게 스승으로서 함께 한다. 나는 딸에게 올라오는 감정을 통해 나의 내면을 만난다. 내가 나에게 단단히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안다. 딸이 나에게 해 주었으면 하는 것들을 적어 내려가니 조금 더 명료해진다. 그것들은 내가 나에게 바라는 점들이다. 감정은 언제나 내게 마음의 지도를 그려내 살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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