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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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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혜 Nov 22. 2024

흔한 오늘

아침편지

난생처음 물을 마시는 것처럼 눈을 감았어요. 눈꺼풀에 간밤의 꿈이 묻어 있어요. 볼을 지나 다문 입술을 열었어요. 벌어진 입술에 컵이 닿았습니다. 미지근한 물이 혀와 천장을 훑어 넘어가요.


굳은 표정의 문지기처럼 지키고 선 나의 재산과 물 한 모금을 바꾸자면 어떤가요? 우리, 음식 없이는 40일을 버티지만 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요. 3일이면 심각한 탈수에 빠지고 생사를 오가게 됩니다. 신생아 몸은 95%가 물이고 성인은 70퍼센트, 노년이면 50% 넘게 떨어진다고요. 서평 올린 <피, 생명의 지문>에서 읽은 내용이에요.


그대가 지금 목이 마르다고 느낀다면 꽤나 늦은 거라지요. 처음 질문처럼 만일 이틀이고 물을 마시지 못한다면 천만 원과 모금을 바꾸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어제 건너 아는 분 소식을 전해 들었어요. 자수성가해 자산이 수십 억은 있는 분이에요. 갑상선암을 진단받은 후 금세 폐와 유방에 전이가 되었다고 하네요. 돈 한 푼 허투루 쓰지 않는 분인데 달라졌습니다.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으니까요. 그래, 돈이 얼마가 들건 신약이든 어떤 치료에든 전재산을 내어 놓을 기세예요.


어려서 검소한 엄마와 함께였어요. 외삼촌이나 이모를 비롯한 외가 식구들 전부가 그래요. 검약하고 소박하십니다. 신용카드는 일절 쓰신 적이 없어요. 어디에든 빚 한 번 지지 않고 사시는 거예요. 목이 날아가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돈은 엉덩이에 깔고 삽니다. 언뜻 보면 그것이 인생 최대의 가치인 것만 같아요. 막내 외삼촌이 급작스레 생을 떠나시는 바람에, 그에 관한 제 의문은 더 커졌습니다.


막 쓰고 살자는 건 아니에요. 그저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묻지 않은 채 맹목적으로 살진 않는지를 돌아보자는 겁니다.


물 한 모금이 그래요. 중요한 건 늘 곁에 있는 것이지, 구하고 얻어야 할 것이 아닙니다. 애를 쓰고 기를 써서 얻고 지켜야 하는 거라면 그건 정말 중요한 게 아니에요.


당연한 오늘 아침이, 당연한 물 한 모금이 그대를 살게 해요. 수십 억 원을 내어도 가질 수 없는 오늘, 무엇보다 귀한 그대와 곁에 사람들입니다.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오늘을 만나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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