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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라코알라 Feb 11. 2022

진정한 입시는 고입?

2월과 3월 사이에 무슨 일이....


핸드폰 벨이 울려서 액정을 보니 △△엄마.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였지만 받을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말도 많고, 말을 옮기기도 좋아하는 그 엄마와 오늘 나누게 될 이야기는 뻔했습니다.

일주일 전 발표된 고등학교 배정 때문이겠죠. 그래서 더 내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6개월 전쯤 걸려온 전화에서 이사를 갈 것 같다고 한 말이 생각나 차마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밝고 낭랑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건너왔습니다.


"잘 지냈어요? 요즘 바빠요? 통 연락이 없네.

요즘 주변 엄마들, 애들 학원비 벌려고 다 일 한다던데....

나 며칠 전에 도봉구로 이사했어요.

○○이 학교 어디 갔어요?"


나의 예상대로 큰 아이가 어느 학교를 갔는지 물어왔습니다. 잠시 멈칫....




큰 아이는 자신이 □외고에 입학할 예정이라는 걸 주변에서 최대한 몰랐으면 합니다. 중학교 때의 상위 성적을 유지하지 못할 것을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는 눈치입니다. 그걸 모르지 않기에 주변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있던 차에 전화를 받은 것이죠.


그러나 '너만 알고 있어' 하는 비밀 얘기 따위는 오래 유지되기 힘든 동네라는 것을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습니다. 곧 3월이 될 것이고, 오며 가며 교복 입은 아이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소식이라 딸아이의 외고 합격 소식을 공유했습니다.

"어머, 축하해요"하는 말과 함께 "○○이, 공부 정~~말 잘했구나!!!"라는 부담스러운 그 말이 따라옵니다.




특목고 중에서도 국제고, 외고 그리고 지역 자사고의 경우 2025년 일반고로 일괄 전환 예정입니다. 하지만 엄마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지원하는 학교들에 속합니다. 일반고와 비교해 내신성적을 받기 어렵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며, 이는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모인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들이 크게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특목고는 '특수 목적 고등학교'의 줄임말, 단어 그대로 특별한 목적을 띈 학교입니다. 따라서 고등학교의 설립 목적이 뚜렷하고, 교육 과정 역시 일반고와 차별화되어 있기 때문에 특목고 선택에서도 아이의 진로와 적성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입시는 고입부터'라는 말이 나온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니 면학 분위기나 대학의 입시결과 혹은 내 아이의 중학교 성적만으로 고등학교를 결정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문과 성향이 두드러지게 강한 큰 아이의 경우 대학에 입학해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 역시 뚜렷하게 인문 사회 계열에 편향되어 있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비교적 쉬웠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중학생들은 3학년이 되어서도 자신이 문과인지 이과인지 잘 모릅니다. 게다가 '융합이네', '통섭이네', '문이과 통합 교육이네' 하는 말들이 나오는 시점에서도 대학은 예전 그대로 문과와 이과를 확실히 구분해 놓고 있으니... 교육과 입시의 엇박자에 학생과 학부모는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밥상머리에서 "◎◎는 컴퓨터공학과 졸업하면 취업은 걱정 없겠어", "◇◇는 국어국문학과 나와서 뭐 하면서 먹고살려는지" 하는 부모님의 대화에 아이들은 귀를 쫑긋합니다. 그러면서 은연중 '나는 이과를 가야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기술과 통신의 발전이 이뤄낸 현대 사회의 편리함과 우주여행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낸 쾌거는 팩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학생들이 이공계를 가야 하고, 모든 학생이 수준 높은 과학과 코딩을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문학이 필요없는 학문은 더더욱 아니고요.


대입 자소서를 컨설팅하면서 자신의 적성과 선호를 무시하고 대세에 따라 이과를 선택한 뒤 뒤늦게 후회하는 친구들을 제법 많이 만났습니다. 그럴 때마다 진로를 서둘러 결정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입시와 교육 과정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러니 '문(과라 죄)송합니다' 같은 말을 만들어내는 사회와 아이들 앞에서 사소한 대화를 나누는 부모님들은 더욱 섬세해져야 합니다. 자신을 여러 각도에서 탐색하고, 자신이 꿈꾸는 모습에 따라 목표를 갖고 공부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그 흘러가듯 사소한 말들이 도움이 아니라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진로를 선택하던지 내 아이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당당하게 독립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청소년의 몫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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