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을 깨고 돌아왔습니다
'저자'란 타이틀 앞에서 저는 한껏 작아졌습니다
쓰고 있던 책을 마무리하는 사이 ‘브런치’는 ‘브런치 스토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달 가까이 글을 쓰지 않았더니 이름이 바뀐 브런치가 매우 낯섭니다. 무엇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동안 글감은 어떻게 찾았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저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하고 싶은 것들을 참고, 매일 한 줄이라도 글을 써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약속한 마감일에 원고를 넘겼죠. 방학 중에는 짬이 날 때마다 글을 썼다면, 아이들이 개학을 하고 나서는 오로지 글쓰기에만 매달렸습니다. 마감일은 다가오는데 갈수록 글은 제 마음에 들지 않아서 괴로웠습니다. 괴로운 마음이 커질수록 노트북 앞에 앉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하염없이 길어졌습니다.
출판사 대표님께 파일을 보내고 시간이 꽤 흘렀는데 용기가 나지 않아 연락을 하지 못했습니다. 원고를 보내고 나면 홀가분할 거라는 제 예상은 이렇게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그냥 부끄럽고 찝찝한 마음만 한가득입니다. 시간이 충분했더라면 더 괜찮은 글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파도가 되어 제 몸을 휘감습니다.
잘했든 못했든 초고를 마치고 나면 그동안 참았던 것들을 모조리 하리라 마음먹고 리스트를 적어두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보고도 전혀 의욕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어디 한 곳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여기저기 제 마음이 떠돌고 있는 느낌입니다. 쓸데없이 냉장고를 정리하고, 손질할 때가 되지 않은 손톱을 깎고 있는 제 모습이 낯섭니다. 그러다 더럭 몸살이 나버렸습니다. 입술이 부르텄고, 열병 비슷한 것을 앓았습니다.
해마다 강의하는 모 고등학교의 수업 준비도 해야 하고, 교육청 학부모 연수 콘텐츠도 보강해야 하는데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생각해 보지 않았던 주제로 책을 써달라는 출판사의 제안에 겁도 없이 덤빈 걸 후회했습니다.
그래도 책을 쓰면서 하나 얻은 게 있다면 제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Thales)는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라고 했다는데, 저는 책을 쓰면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해낸 느낌입니다. 제가 얼마나 겸손하지 못한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지식이 부족한 사람인지, 얼마나 충동적인 사람인지 촘촘히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다시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글감을 찾는 데는 책만 한 것이 없고, 부족한 저를 채우는 데도 그만한 것이 없어서 말이죠.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부족함을 알고, 더욱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이 자칫 제 자신을 하찮고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내몰지 않도록 말입니다. 모르는 것 앞에서 겸손할 수 있다는 것은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달의 시간 동안 제 글을 기다려주신 독자님이 있다면 저는 참으로 행복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오랜 시간 '브런치 스토리'에 자리를 비우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나를 위해서도, 글벗님과 독자님을 위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