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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라코알라 Mar 01. 2023

이런 조건이라도 취업하시겠습니까?

다큐프라임 저출생 보고서 <인구에서 인간으로>


출근시간은 새벽 6시가 될 수도... 운 좋으면 8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퇴근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이르면 밤 9시, 까딱하면 자정이 될 수도 있겠네요. 중간중간 잠을 깨서 확인해야 하는 것도 필수 사항입니다. 주요한 일과는 반드시 시간을 지켜 완수해야 합니다. 정해진 일과를 수행하지 못했다고 해서 결코 미룰 수 없습니다. 하루에 100번 이상 10kg 쌀가마니를 들어 올리고 내리는 하역 작업을 해야 하고, 휴식 시간은 1시간 남짓입니다. 잠깐!! 휴식 시간을 완전히 보장할 수 없음을 사전에 고지합니다. 이런 일자리라도 취업을 고려하시겠습니까?


제 대답은 No way!!


예상하셨겠지만 저 일자리는 육아입니다. 전 뭣도 모르고 저 험난한 길을 제 발로 걸어 들어갔죠. 낳으면 절로 크는 줄만 알았던 육. 알. 못.(육아를 알지 못하는) 엄마는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할 거다"하는 어른들 말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낳기 전까지 말이죠.


3월이 시작되었습니다. MZ 세대 학부모를 상대로 부모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부모 교육도 연차가 늘다 보니 만나는 학부모의 연령 차도 점점 커지네요. 저의 경우, 결혼을 하고 약 2년간은 아이를 갖지 않고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 계획하여 첫째를 임신하였고, 임신이 확인된 시점에서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그때는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외벌이 남편의 수입에 맞춰 모든 씀씀이를 줄여야 했지만 그간 모아둔 돈도 있고 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데 그렇게 큰 비용이 드는지도 모르고 겁 없이...


제 커리어요? 그것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저보다는 남편의 커리어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일을 그만둔 걸 후회한 적도 없고 말이죠. 무엇보다 당시 저는 아이를 건강하게 제 손으로 잘 키우는 것이 여러 면에서 현실적이고 경제적이면서도 최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 '잘'이라는 것에 늘 의문을 품곤 했지만요. 어찌 되었든 다큐멘터리 속 MZ 세대 엄마와 아빠의 생각은 저와 많이 달랐습니다.


엄마의 커리어도 아빠의 커리어만큼 중요하며, 아이 때문에 경력이 멈추는 것을 서로가 원하지 않았습니다. 일과 육아의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6:3 정도? 나머지 1은 집안일이라고 하네요. 저는 그들과는 다른 생각, 다른 가치관을 갖고 살았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사실 저는 육아와 집안일을 구분할 생각도 못했습니다. 제게 있어 육아는 아이를 입히고, 먹이고, 재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집을 치우고 음식을 만들고 빨래를 하는 온갖 집안일을 포함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동안 MZ 세대의 부모들이나 가질법한 가치관과 사고를 갖고 여태껏 그들을 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긴 경력 단절로 과거의 커리어와는 무관한 일을 하고 있지만, 새롭게 시작한 이 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MZ 세대 못지않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저는 삶의 중심이 아이들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네요.


아이에게 맞춰져 있던 제 삶을 돌이켜보면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 것이 내 행복이었는데 MZ 세대 부모들은 내가 행복해야 육아도, 아이도 행복하다고 생각한답니다. 어찌 보면 현명한 것 같지만 한편 생각하면 커리어와 육아, 모두를 다 잘 해내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느껴지는 혼란스러움,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안고 사는 그들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저라고 완벽했겠습니까? 그래도 전 아이들과 일 사이에서 저울질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어쩌면 미안함을 덮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육아는 아이만 키우는 게 아닙니다. 육아를 통해 나도 키워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와 나, 둘 사이에서 밸런스를 맞추는 건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난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완벽하게 해내려는 슈퍼우먼 콤플렉스에 그들이 잠식당하게 내버려 두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가 하는 부모교육 또한 바뀌어야겠죠. '이렇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로 말이죠.


자녀가 중학생이 되면서 일을 그만둔 엄마들을 강의장에서 심심찮게 만납니다. 그런 결정의 배경에는 자녀의 학업을 진짜로 신경 써 줄 때가 되어서라는 이유 하나. 하지만 아이는 진작 사춘기가 시작되었고, 부모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듣는 시기에 부모가 뭔가 해보려고 애쓸수록 엇나가는 아이를 보면서 자식에 대한 원망이 더욱 커졌다고 하더군요.


제가 생각하는 육아휴직의 적기는 애착이 형성되는 시기 그리고 자녀가 초등학교를 입학해 학교에 적응하는 시기. 그때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육아휴직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에 나누어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기간도 최소 3~4년을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초등 전에야 퇴근시간까지 맡겨도 안전한(물론 아닌 곳도 뉴스에 나오긴 하지만 대체로) '어린이집'이 있지만 초등 시기에는 돌봄 교실이 아니면 아이 혼자서 학원을 뺑뺑이 돌며 부모가 귀가하는 시간까지 힘들게 버텨야 하기 때문이죠.


필요한 학습 습관을 들이기에도 그 시기가 가장 적당합니다. 66일이요? 무슨 말씀을... 2~3년은 했다가 포기하고, 다시 시작하길 반복하며 서서히 잡혀 나가는 것이 습관인걸요. 그걸 함께 옆에서 도와주어야 아이 혼자서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자기주도에 대한 오해이자 진실이죠. 저절로 혼자 잘하는 것이 '자기주도'라는 말은 허상입니다.


'인구 절벽'이니, '저출생 위기'니 따위의 말은 젊은 세대에게 전혀 위협적이지 않습니다. 설득력, 타격감 제로라고 봐도 좋을 듯합니다. 나라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말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꿈꾸고,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아이와 내가 밸런스를 맞춰가며 양립이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제도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어야 인구 절벽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도 생기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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