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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라코알라 Mar 15. 2022

첫 시험에 대한 생각

시험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며칠 전(아마도 대선 때였나 봅니다)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2013년 KBS 다큐멘터리 <공부하는 인간 : 호모 아카데미쿠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대학(원)생들이 중국, 한국, 일본, 인도 등의 나라를 돌아다니며 각 나라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취재하고, 인터뷰했던 것으로 방영 당시 꽤 흥미롭게 봤던 기억이 니다. 그런데 이걸 최근에 다시 방영했던 것이죠. 이 말은 대한민국의 교육이 9년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요?


다큐의 내용 중 제 기억에 인상적으로 남았던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주로 암기를 위주로 공부한다는 것(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미국과 유럽의 입시 제도와 교실의 모습을 비교하니 두드러진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과 다른 하나는 배우고 가르치는 방식이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걸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사람들의 생각과 사회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교육과 학습의 방식 또한 쉽게 바뀔 수 없음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2022년 3월 24일은 서울시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고등학생들의 첫 번째 모의고사가 예정된 날입니다. 늘 그래왔듯 첫 모의고사는 전 학년에서 공부한 모든 내용이 출제 범위에 해당됩니다. 학년이 바뀌고 학교에서 치르는 첫 시험은 여러 가지로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우선 두 달여간의 방학 동안 보충과 정리가 필요한 과목을 찾아 꼼꼼히 채웠는지, 자신의 학습 능력과 수준을 점검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을 점검하고 성찰하는 도구로 시험을 대하는 학생을 찾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첫 시험이란 선생님과 친구들이 나를 평가하는 첫 번째 잣대이며, 대학 입시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하나의 의식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그 의식은 되도록 잘 치러야 하고, 못 보면 스스로를 책망하는 원인이 되고 마는 것이죠. 시험이 쉽고 어렵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와 같은 날 시험을 치른 친구들이 시험을 잘 봤는지 못 봤는지가 더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되어버린 현실이 뼈아픕니다.




그렇다면 왜 누구는 시험을 잘 보고, 누구는 망치는 걸까요? 창춘옌 국립대만사범대 석좌교수가 이 부분을 연구해 한때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부모가 다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들이 시험을 못 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죠. 생각 여기에 이르자 시험을 못 보는 유전적 요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치러지는 대만에서 꽤나 중요한 BCT라는 시험을 보는 학생 779명의 DNA를 추출하기에 이릅니다. 이 연구의 결과가 2015년 EBS 다큐멘터리 <시험>에서 도파민을 분해하는 '콤트 유전자'로 처음 소개됩니다. '콤트 유전자' 시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과다하게 분비되는 도파민을 분해하는 유전자로 도파민 분해 속도가 빠르면 전사형, 반대로 그 속도가 느린 경우 걱정쟁이형으로 구분했습니다. 전체 10% 정도에 해당하는 걱정쟁이형의 경우, 극도의 긴장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시험을 망치게 된다는 것이죠.

 

EBS 다큐멘터리 <시험>에 소개된 전사형 vs 걱정쟁이형


그렇다면 걱정쟁이형평소에도 불안과 초조, 긴장을 유지한 상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시험에만 취약할 뿐 평소에는 오히려 도파민을 천천히 분해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사고할 수 있고, 논리력, 집중력, 기억력도 우수하다고 합니다. 이 연구의 결론은 시험을 보는 환경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시험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죠. 그래서 시험만으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시험의 결과 진짜 실력으로 인정될 수 없는 다양한 예시들이 소개되었습니다.




저는 '시험'이라는 도구가 나의 실력과 수준을 점검하는 용도가 아니라 선발의 도구로만 기능하는 대한민국의 교육에 큰 문제가 있음을 고 싶습니다. 0.1점에 등급이 갈리면 친구를 경쟁자로인식하는 수준에 머물 것입니다. 협업 능력과 소통 능력이 강조되는 21세기의 미래 핵심 역량을 학교에서는 더 이상 키울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제가 이렇게 글을 쓴다고 해서 입시와 교육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인 우리가 '내 아이만큼은 반드시 좋은 대학에 가야 해'라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가진 부모가 많아진다면 어떨까요? 사회의 구조는 그렇다 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면 교육과 학습의 방식도 차츰 변화가 생길 거라 믿습니다.




시험과 평가가 입시의 잣대나 기준이 아니라 내 아이의 가능성과 잠재력, 실패와 성장에 대해 생각해보는 도구로 활용된다면 시험을 잘 보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추이와 변화를 지켜보며 자녀가 바라는 모습, 원하는 결과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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