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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라코알라 May 15. 2022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를 읽고

당당한 두 딸의 뒤에는 겸손한 부모가 있었다


청소를 하고 나면 거슬리던 바닥의 머리카락들이 사라지고 대신 청소기 먼지통이 가득 찹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집안일 중 하나입니다. 서걱서걱하던 발바닥의 감촉이 뽀송뽀송해지면 무슨 일이든 산뜻하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기분이거든요. 강의가 없는 날이면 예외 없이 가장 먼저 하는 집안일이기도 합니다.


반면 설거지는 다음 식사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집안일입니다. 만약 끼니를 거르는 일이 생긴다면 설거지도 함께 미뤄지기 일쑤죠. 저에게 청소가 그렇듯 깨끗해지는 식기들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설거지가 가장 하기 싫은 집안일 중 하나이니 별 수 있나요. 그릇을 닦는 동안 최애 프로그램 <유 퀴즈>를 보는 수밖에요.




'서방님'을 부른 가수 이소은 씨가 출연했네요. 현재는 뉴욕의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답니다. 그녀의 다양한 이력 뒤에 숨은 노력과 고뇌, 이런저런 사연들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그녀의 부모님이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어려서부터 실패를 할 때마다 그녀는 부모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딸, 너의 실패를 축하해'로 시작하는 카드에는 지금의 실패가 5~6년 뒤에 어떤 기회가 생겼을 때 가장 훌륭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을 테니 오늘의 실패를 축하받아 마땅하다는 내용이었다는군요. 부모님의 영향 때문이었을까요? 이소은 씨는 평소 '실패 이력서'를 쓴다니다. 글로 마음을 정리하는 습관 만든 특별한 이력서. 실패 이력서를 다시 보니 자신이 시도해 봤던 목록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군요. 여전히 하고 싶은 것 많고, 실패했지만 다시 도전해 보고 싶은 것들도 많다고 말하는 그녀참 건강하고,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소은 씨의 아버지 이규천 님이 쓴 책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말이 양육을 고민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무게로 다가갈지 무척 고민되었다는 글의 첫머리에서 사려 깊음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들어가는 글에서 이미 해답을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본인들은 자녀교육과 관련해 부모로서 특별히 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저 많이 믿어준 것, 아이가 힘들어할 때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묻고 함께 고민해 준 것이 전부라고 하네요.


양육은 정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 다른 양육 방법으로 자녀를 키우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모든 부모가 궁극으로 바라는 것은 자녀의 행복이 아닐까요? 자녀의 행복을 고민하는 일은 민둥산에 나무를 심는 것과 같은 심정이라고 서술한 저의 말에서 '부모되기는 쉽지만 부모답기는 어렵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이들이 자라 과정에서 저 역시 정답지 없는 시험 문제를 하나씩 받는 기분일 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부모로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 순간순간 고민이 많았죠.  그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건 나를 위한 것인가, 아이를 위한 것인가'


저자는 작은딸 이소은에 대해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역으로 새로움을 갈망했던 아이로 회상했습니다.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열망을 변호사라는 직업으로 실현하고도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그녀의 모습과 겹쳐지네요. 그러던 중 '프로보노'로 망명 신청자의 변론을 맡으며 자신의 일에 감사함과 자긍심을 느끼게 됐다는 그녀.


아빠는 초등학교 4학년 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답니다. "나한테 공부하라고 하지 말고, '유익한 것을 하라'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어." 딸의 당돌한 말 한마디에 머리를 맞은 듯 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됐다고 말하네요. 어쩌면 아이로부터 배우고 반성할 수 있는 부모 당당하고 자존감 높은 자녀를 키워낼 수 있었던 건 아 생각봤습니다.




혹시라도 '아빠의 방목 철학'이라는 부제를 보고, '방목'에 주목해서 기대를 갖고 책장을 펼다면 후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녀는 매 순간 부모의 관심과 사랑, 지지와 격려, 믿음과 인내를 필요로 하니까 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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