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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라코알라 Mar 20. 2022

「두 늙은 여자」를 읽고

성숙하고 현명한 어른에 대해


삶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해야 할 바를 성취하는 데에는 사회에서 평가하는 능력이나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능력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이가 왜 안 중요하겠는가. 마흔 개의 여름이 어떻게 여든 개의 여름을 이기겠는가. 마흔 살에게 마흔한 번째 봄은 미지의 시간이지만 여든 살에게는 무엇으로도 쓸 수 있는 단단한 기억인 것을.
시간이란 길이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의 문제이고, 그림을 그림이게 하는 것 역시 원근이 아니라 깊이(메를로 퐁티)라는 것을 칙디야크와 샤가 그들이 본 여든한 개의 여름과 일흔여섯 개의 가을로 확인해 준다.

「두 늙은 여자」 중에서



「두 늙은 여자」는 지금도 사냥과 낚시에 의존하며 자급자족을 유지하는 알래스카의 인디언 종족 중 하나인 그위친 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물고기도 먹지만 큰 사슴이나 순록, 토끼나 다람쥐 고기가 보다 주요한 식량인데 그것들을 확보하기 위해 장소를 이동하며 살고 있죠.


어느 혹독한 겨울, 맹추위 때문에 먹이가 될만한 동물들이 자취를 감추자 식량이 부족해지고, 부족 내에서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부족 회의에서는 가장 연장자인 두 늙은 여자 샤와 칙디야크를 버리고 가자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짐승이 살아가는 방식을 인간도 따른다고 생각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지만 한편 늘 여기저기 아프다고 불평하고, 늙음을 무기처럼 과시는 두 늙은 여인이 빠른 이동에 걸림돌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에 부족을 이끄는 족장의 입장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리는 것 역시 고통스러운 일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딸이 부족의 결정에 토씨 하나 달지 않고 동의했다는 것에 큰 상처를 받은 칙디야크는 그렇게 4살 어린 샤와 함께 버려지게 됩니다. 그들의 나이는 80살, 76살. 배신감과 분노, 절망과 한숨 잠시,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는 결기로 두 늙은 여인은 자신들의 삶을 이어갑니다. 혼자 남겨진 게 아니라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던 두 여인은 지치고 힘들 때마다 자신의 과거를 꺼내 놓으며 차차 서로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키워갑니다. 사냥하는 법, 자작나무 껍질과 버드나무 가지로 그물을 만들고 신발을 만드는 법, 동물의 가죽을 이어 보호구를 만들고 옷으로 걸치고, 연어의 내장과 껍질로 물고기를 담는 주머니를 만드는 등 그들에게는 책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축적된, 몸에 새겨진 어마어마한 노하우가 있었고 그녀들이 생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동하면서 두 여인은 자신들이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다는 것과 그럼에도 일하기를 거부하며 만족할 줄 모르고 불평을 해댄 지난 세월을 반성합니다.


이 책은 뒤로 갈수록 진수입니다. 두 할머니의 생존 사실이 부족에게 알려지면서 자신을 버린 그들을 포용하고 용서하는 과정은 감동이었습니다. 눈물이 날 만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습니다. 지혜로움과 강인함은 늙은 두 여인의 것이었고, 존경심과 존중은 늙은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통해 스스로가 그런 존재임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샤와 칙디야크는 더 이상 버림받지 않고, 행복한 삶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요즘 들어 '잘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딸들에게 종종 "난 우리 딸들이 이렇게 빨리 크는 게 아깝기도 하지만 또 너무 좋아"하고 말하면, 큰아이는 "엄마가 늙는데도 좋아?"라고 묻습니다. 그저 생각만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내 피부, 몸의 감각과 기억력 등이 동시에 늙고 있기 때문에 딸은 영 이해가 되지 않는 눈치입니다. 저도 샤와 칙디야크 만큼은 아니더라도 오래 걷고 난 다음날이면 깨는 것이 힘들고, 누군가 부지런을 떨어도 눈을 감고 모른척하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름 사이사이에 녹아내린 너그러움과 남의 고통을 각별히 여기고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넉넉한 품과 용기가 생긴다면 늙는다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책을 덮으며 '잘 나이 드는 것'은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가짐과 행동거지로 내가 잘 증명해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잘 나이 든' 성숙하고 현명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네요. 무엇으로 그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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