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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age Text Narrative May 25. 2020

한권의 책이 주는 여러가지 생각들

민음사 인문잡지 한편 2호 인플루언서

그런 기분을 나만 느끼는 것일지는 모르겠다. 돌연 궁금한 분야가 생기고 그 분야에 대한 책을 찾아보고 그리고 (언제 읽을지는 미정인) 책들을 사서 소유하면 마치 그 분야에 대한 일정한 지식을 막연한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들과 1/n으로 나눠 가지는 것만 같은 풍족한 기분을 -


때로는 그런 기분으로 책을 소유하고 소비한다. 이 책은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구성이 마음에 들어서, 저 책은 언젠간 백과사전처럼 꺼내먹기 위해서, 그리고 수많은 이유들...


올해 민음사에서 인문 잡지를 창간하였다. 책에는 주제에 관련된 글들이 빼곡히 실려있고 어느 가방이든, 어느 크기의 손을 가졌든 쏙 쏙 잡히는 크기로 만들어졌다. (쏙 쏙 잡혀서 1-2일 만에 4개월에 한 번 나오는 잡지를 다 읽어버린다는 건 아름다운 단점이다.)


이번 2호는 인플루언서에 대한 이야기로 책에서 조금 빌려와 말하자면, 영향력에 대해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SNS 시대의 인문학에 대한 글들이다. 사실 한편이 오기 전 내심 “코로나 19”에 대한 이야기로 한 권이 엮어져 있다면 나중으로 밀어두려고 했다. 연이어 탄생한 유튜브의 미래 예언자들에 의해 흔들리는 내 정신과 마음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어 눈을 잠시 감고 지내기로 결심했던 것이었다.

여하튼 본론으로 돌아가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을 좀 더 설명하자면,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해져 버린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에 의존하고 소비되는 나의 자아가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소셜미디어를 떠나 “어떠한” 테두리에 의존하며 주체적이지 못했던 나의 모습들도 함께.

한 권의 인문 잡지를 다 읽고 머릿속에 가장 많이 맴도는 단어는 진정성 (authencity)과 현명한 팔로워였다. 물론 단면적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타인이나 대상에 대해 진정성을 평가하는 것만큼 오만함도 없을 테지만, 예를 들자면 “환경친화적” 과 “지속가능성” 같은 단어를 마케팅 키워드로 쓰면서 의도적으로 생산과정이나 소재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지 않거나 또는 이미 불법인 운영 방식이나 소재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 진정성이 없는 그런 것들을 소비하는 나는 지쳤었던가? 현명한 팔로워였던가?라는 끊임없는 질문이 던져졌고 어쩌면 내가 추구하는 방향의 심지에 따뜻한 햇빛이 쬐어지는 기분이었다.

책의 마지막 수록 글인 윤해영 청소년 기후행동 활동가의 <영향, 연결, 행동>은 아마 가장 임팩트 있던 글이 었던 것 같다. 물론 주제는 기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윤해영이 진정으로 말하는 것은 그것보다 더 이상이라 생각되었다. 윤해영의 말을 조금 빌리자면, “타자의 고통에 좀 더 민감해지면 좋겠지만, 내 일상을 침범해야 인식이 바뀐다면 그 지점을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 기후위기에 당사자라 느낀 청소년이 기후행동을 시작했듯, 각자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향한 위협을 절감할 구체적인 순간이 필요하다. 나는 우리 행동이 하나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개인이 변하는 연속적인 과정에 존재하면 좋겠다.... 그렇게 노예제가 폐지되었고,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되었듯이” (pg 206-207). 이 부분에서 나는 내가 눈을 감았던 많은 순간들이 생각났고 창피했다. 피하고 싶어서, 두려워서, 확신이 서지 않아서, 힘이 없어서 그리고 안될 거 같아서... 그렇게 감았던 순간들이 생각났다. 물론 나의 순간들은 윤해영의 활동처럼 공적인 선한 영향력의 순간들은 아니었지만,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그리고 하고 싶었던 작품들을 확신이 서지 않아서 또는, 대세 담론에 배제될 것 같아서 주저했던 순간들이 생각났다. 부끄러웠고 하지만 힘이 되었고 그래서 일면식도 없는 윤해영과 우리가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갈 자연을 위해서 일회용품이라도 꼭 줄이자! 하며 다시 한번 되짚어 보는 글이었다. ‘기후변화에서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들로 생각이 연결된다니’ 하며 이기적인 나의 모습에 다시 한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내가 신년에 보냈던 편지에 미국에서 사는 친구의 답장이 우편함에 도착했다. 친구는 코로나로 답장이 늦어졌다 말하였고 글을 써서 보내는 종이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만나서 시간을 보낸 날의 흔적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3년 전 봄에 국립현대미술관 MMCA에서 테이트 미술관과 진행했던 <International Symposium - 분열된 영토들: 1989년 이후 아시아 미술 심포지엄>에 참가한 교수님의 아티스트 토크를 들으러 갔었고 거기서 드로잉 노트를 기념품으로 받았었다. 옅지만 선명한 기억으론 미술관 건너편 칼국수집에서 만둣국을 먹었고 그리고 그 옆 커피숍인지 철 지난 뜨개모자를 파는 옷가게 인지 구분이 안 가는 “상점”에서 2000원짜리 커피를 샀고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맛없는 커피에 익숙해 잃었던 미각이 지난 시간을 잊어버리고 한국의 카페 문화에 적응해 미식가처럼 얼마나 까탈스러워졌는지에 대해 웃으며 말했었다. 그리고 친구는 함께 미술에 대해 이야기했던 시간들이 그립다고 말했다. 같이 기념품으로 받았던 노트의 표지를 찢어 써내려 간 친구의 편지의 진정성이 좋았다. (오랜만에 같은 노트를 꺼내 3년 전 스케치들을 봤다. 참 못 그렸다!)


“WWW (월드 와이드 웹)”처럼 하나로 이어진 지구촌에서 몇십 년을 살아온 인류가 미세한 바이러스로 인해 비대면으로 살아가는 일상에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 가고 있다. 최근 미술계도 예술의 유통과 소비의 새로운 장을 구축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 나 또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있다. 짧고 어설픈 지식이지만 나에게 확신이 드는 것은... 전시는 작품을 “세상”에 보여주는 계기이며 기점은 맞지만, 보이지 않아도 예술은 이미 하나의 자아를 풍부하게 만들며 충족시킨다는 것. 

www.minhyechoi.com

“한편 2호”가 나에게 던져준 생각들이 내가 2019년에 진행한 작업물들과도 닮아 있다 생각하여 공유하려고 한다. 시리즈의 제목은 <격양된 목소리의 챈트>인데, 이때 챈트는 주술적인 의미가 담긴 노래나 구호쯤이다. 작품은 - 사실 여기서 나는 - “Hi, I’m a sacred object and this is a sacred place. So pray for me, and dance with me!” (안녕, 나는 신성한 오브제이고 여기는 신성한 곳이야. 그러니깐 나를 위해 기도해줘 그리고 나와 함께 춤을 쳐줘!)라고 조용하게 혹은 크게 외치고 있다. 이 작품은 제도적인 전시 형태의 한계에 심리적인 코너로 몰려버린 작품의 슬픈 외침을 텍스트와 그림/캔버스의 뒤편에 표현한 작품이다. 연극 무대에서 빛을 받는 연기자들을 위해 컴컴한 무대 뒤에서 일하는 테크 크루 (Tech Crew)들처럼 캔버스 뒷면에서 작가의 자아는 어디에서 보이는 것과 관계없이 작품의 독립적인 존재가 그곳이 어디든 공간을 아름답게 혹은 신성하게 그리고 자신(작품)의 존재가 단단해지길 간절히 염원한다. 과연 작품은 하얀 입방체의 신화로부터 어디까지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 타인의 인정과 승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이번엔 진정성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코로나로 일상이 멈춰서도 내 주위에는 매일 “작업”하시는 분들이 자리를 지키고 계신다. 코로나가 오건 말건, 마치 하루정도 내리는 소나기 마냥, 그것이 예술이던 아니던 오늘 해야 하는 일은 오늘 꼭 하시는 분들. 무너져버린 일상에서 다시 일상으로 하루를 엮어내는 분들. 진정성으로 똘똘 뭉치신 분들. 이번 “한편”과도 일맥상통하는 “연결”되는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런 진정성이 많은 분께 전해지길!


<팔로어에게는 힘이 없다>의 유현주는 플라톤의 말을 빌리며 “문자는 죽은 지식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할 뿐, 상대방의 반응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변형되는, 살아 있는 통로가 되지 못한다. 우리는 책의 저자가 적어놓은 내용들을 일방적으로 전달받을 뿐, 우리의 의견을 다시 전해 줄 수도, 또 책을 읽으며 생겨난 의문에 대해서도 질문할 수 없다 (pg 159)”라는 문장을 썼지만 - 작가의 글의 일부이며 작가의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한편 2호의 유현주와 그 외 10인의 작가가 나에게 전한 진정성은 감히 죽어있는 통로는 아님을 꼭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문자로 남긴다.



2020.05.25

최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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