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소리를 질러야만 하는가 -
"엄마! 당장 사과해! 사과하라고!!"
"왜 대답을 안 하는 거야! 대답 안 한 것 당장 사과해!!!"
분주한 유치원 등원차량 안에서 오늘도 아들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둘째 딸아이가 장난감을 들고 가겠다고 울며 떼를 쓰는 바람에 아들을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제 7살이면 상황 파악하고 얌전히 있어야지.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저렇게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는 아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너 또... 또 소리 질러? 내려 그냥. 가지 마"
나는 도끼눈을 뜨고 아들을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마침, 아이들을 모두 태운 선생님이 그제야 아이에게 다가가 주의를 줬다. 그 사이 버스 문이 닫히고 아들은 차가 출발하는 동안에도 쉽게 진정하지 못하고 삿대질을 나를 노려봤다. 오늘 아침은 제법 순조롭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였다. 그렇게 아이들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버스를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유치원을 오늘 못 가더라도 그러면 안 된다고 가르쳐야 했는데. 후회가 밀려왔고, 화가 치밀었다.
나의 첫 아이, 내 아들. 내 모든 걸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지구의 생명체. 그런 존재가 몇 년째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미치게 한다 사실을 또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열정을 다해 보살펴야지, 넘치게 사랑해주어야지, 눈물 나게 행복하게 해 주어야지. 내 뼈를 갈아서 양육하겠노라 다짐했었다. 어떤 아이가 태어나더라도 말이다. 그 어떤 아이가 태어나더라도, 나는 나의 헌신으로 이 모든 것이 가능하리라 자만했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몸의 고달픔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이 '마음'이라는 것을 모르고서 말이다. 애초에 내가 생각하는 내 아이는 주는 대로 잘 먹고, 토닥이면 잠들고, 데려가면 잘 놀고, 부르면 달려오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뭣도 모르고. 그래서 이렇게 된통 당하는 거지!!
아들은 젖먹이 아기 때부터 모든 게 힘든 아이였다.
옹알이를 하면서도 금방 반응해주지 않으면 울고 화를 냈다. 잠귀도 밝아서 한 시간 공들여 겨우 재웠어도 윗집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에 잠이 깨서 두 시간을 내리 우는 아이. 이리 가자고 손을 잡아끌면 휙! 뿌리치고 반대쪽으로 달려가는 아이. 차를 타도 울고, 기차를 타도 울었다. 처음 보는 낯선 아저씨의 목소리, 전기밥솥 안내 음성 소리, 세탁이 돌아가는 소리, 에어컨 켜고 끄는 소리 등 모든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실체를 확인할 때까지 고집스럽게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다니고 찾을 때까지 짜증을 냈다.
반면에, 웃음도 많았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주면 흥이 넘쳐 온몸을 들썩이며 따라 불렀다. 낙엽이 머리 위에 떨어졌을 때도 간지럽다고 한참을 깔깔깔 웃었었다. 책을 읽어주면 주인공 감정에 이입해서 웃고 울고 화내는 그런 아이였다.책을 부지런히 읽어준 덕일까, 아들은 한글도 제법 빨리 깨쳤다. 그리곤 머지않아 '엄마 똥, 엄마 바보, 바보 엄마, 엄마 바보 똥' 이런 글자들로 공책 한 권 가득 채웠었다. 그래도 그땐 귀여웠지.....
계속 이런 식으로 하다간 영영 사이가 틀어질까 걱정되어 아들에 관한 육아서적과 유튜브 추천 영상을 열심히 보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그야 당연한 것이 나도 바뀌지 않고 아들도 바뀌지 않기 때문에.
소리만 좀 지르지 않으면 좋겠는데 제발.
나는 고함소리만 들으면 신경이 예민해진다. 특히 화가 나서 지르는 소리, 누군가를 향해 화를 내는 소리, 난 그 소리들이 싫다. 아니, 못 견디겠다. 그게 내 아들의 소리라고 해도 나는 좀처럼 이겨내기가 힘들다. 어렸을 적 아빠가 시시때때로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금 내 아들이 나에게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아들, 너는 왜 소리를 지르는 것인가.
왜 소리를 질러야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