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NGO (비영리 기관)에 다니는 8년차 직장인이다. 한국에서 어려운 나라를 도와주는 국제개발 사업을 담당하는 업무를 3년 반하고 국제사업 전략을 담당하는 업무를 3년 반하고 다시 사업담당자로 돌아왔다. 그 8년의 시간동안 한 기관을 다니고 있다. 10년 근속자가 허다한 그런 기관이니 나같은 직원은 오래다닌 축에도 못낀다. 회사 복지가 좋은 것도 있고, 영리기관보다는 사내외 경쟁이 덜 치열하기에 좀 안정적인 분위기도 있다. 그렇기에 조직문화가 권위적이면서 보수적인 부분이 많다. 그에 더해서 일하는 방식도 오래된 옛 방식을 고수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면도 없지는 않다. 우리 조직의 민낯이지만 우리만 그런게 아니라 이 분야의 문화가 대부분 그렇다. 아래 표를 보면 가족적인 문화와 시스템중심의 문화 중간 어디 쯤인 것 같다.
BSC 기반으로 기관의 중장기 전략을 3년마다 수립한다. 수립하기 위해서 6개월에서 1년의 기간이 투여된다. 그에 맞게 연간 업무 평가와 계획이 12월부터 2월 사이에 진행되고, 부서업무, 팀업무, 개인업무까지 내려오면 3월 말에서 4월정도까지 되기도 한다. 그렇게 개인목표합의를 KPI로 정의하는데 1분기 이상의 시간이 소요가된다. 평가와 계획에 공을 들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기간이 상당히 길고 소모적이다.
KPI의 문제는 이미 우스갯소리가 넘쳐나듯, 단점이 많이 부각되지만, 조직관리의 관점에서는 사람을 부리기에는 정말 좋은 툴이다. 그래서 많은 조직들이 이미 탈KPI를 선언하고 다른 방식으로 업무 계획과 성과관리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 기관은 KPI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 조직처럼 계층구조를 갖는 조직체계에서는 KPI를 대체할만한 관리 툴이 없다고 본다.
그렇게 연초가 한참 지난 시기에 직원 개인에게 KPI가 수립되고 한해 개인의 업적은 KPI에 있는 지표들로 평가를 받는다. 연중에 한번 중간 평가를 하고 1월에 다시 최종 평가를 하여 내가 한일을 KPI에 맞춰서 인정을 받는다. 1년단위로 조직은 계획과 실행을 하는 것이 익숙해져서 대부분의 업무는 간트차트에 정리하기 편리한 형태가 된다. 나는 여기서 우리 조직의 문제를 발견한다!
일하는 방식이 1년주기로 맞춰지다보니 새로운 것을 연중에 기획하고 실행하기는 매우 어렵다. 서비스/상품 등 중요한 문제가 보이고 고치고 싶어도 차년도 업무에 반영하여 필요한 자원과 인력 및 지원을 확보하지 않으면 새로운 업무나 이니셔티브는 계획 실행이 어렵다. 합의되지 않은 새로운 업무에는 중요성에 관계없이 조직안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다. KPI로 정의된 실무자들의 업무는 그 계획들로 이미 꽉차 있고, 새로운 업무는 개인목표합의 중간 수정기간이 있지만, 새로운 업무를 끼워넣기 어려운 문화다. 그리고 리더들의 의사결정 없이는 연간 업무 계획에 넣을 수도 없다. 리더를 설득하기 위해서 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조직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1년에도 새로운 서비스가 무수히 나오고, 매년 변하는 신기술에 맞춰 고객의 특성과 생활방식이 변해가는데, 이를 따라가기에는 1년 단위의 계획과 실행은 토끼 따라가는 거북이 발걸음 같다.
더욱이 그렇게 BSC로 업무가 분장되다 보니 주관부서와 지원부서로 업무가 구별된다. 기관 전체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과제는 주요한 사업부서가 모두 함께 협력해야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분절화된 구조안에서 사일로 현상이 발생하고, 우리부서의 우선순위가 아닌 것들은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부수적인 업무가 되어 버린다. 내 일 네 일이 만들어지고, 서로의 영역이 점선으로 보이지 않지만 넘지않는 줄선으로 그어진다. BSC상으로는 공동의 목표지만, 명목상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새로운 임무
이런 중에 나는 새로운 업무를 맡게되고 부서를 넘나드는 value chain을 갖고 있는 상품에 대한 활성화 이니셔티브를 책임지게 되었다. 예산도 없고 인력지원도 없다. 중요한 전략적 방향성도 아니다. 그러나 비영리 기관의 최전선에 있는 모금활동가(마케터)의 업무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사업부서의 많은 인력이 투여되는 그런 상품이다. 그러나 전략적이지 않은 방향성과 기획이 없기에, 그 중요성은 간과되고 있는 그런 상품이다.
업무를 기획하면서 많은 고민이 있었고,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한계가 분명 존재했다. 지금의 프로세스, 조직적 구조, 시스템, 자원 등을 고려하면 그냥 불가능한 미션인 셈이다. 그런 중에 스프린트라는 책을 팀장님으로부터 소개받고 읽게 되었다. 기획실행 툴정도만 모아놓은 것인 줄 알고 초반 몇장을 설렁설렁 읽었는데, 읽을수록 "이거였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스프린트라는 구글 벤쳐스의기획실행방식을 도입해보기로 결정하였다. 스프린트라는 말 뜻처럼 전략질주 하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어 하는 마음으로, 마치 출발선 앞에 선 100미터 단거리 주자의 쿵쾅거리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스프린트를 준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