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눈에 하찮게 보이는 옛 것들, 특히 건축물에 대한 건축가의 남다른 시선의 책이다. 새 것, 깨끗한 것, 최신 것만 찾는 요즘에 옛날 것들을 바꿀 수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기록한 책이다. 책 재질부터 요즘 것들과 다르다. 영미 페이퍼북에 주로 쓰이는 재생종이 같은 종이와 두껍지 않은 표지. 그러나 책 장안에 사진은 컬러라서 좋다.
처음에 책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할 줄 알았는데, 책의 내용은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옛 건물안에 사는 사람들의 철학과 삶의 태도가 재미있다. 대부분 강북에 있는 지역들이다. 강남은 계획된 지역들이 많아 역사가 길지 않다. 그러나 강북에는 옛적부터 살아온 삶의 흔적이 개발해야 될 것으로 낙인 찍혀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책이 나온 시기는 꽤 지나서 이미 많이 변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옛날에는 이곳이 이랬구나를 비교하면서 읽어가는 재미가 있다.
용산, 이태원, 연남동, 종로 등 차가 지나다니기 어려운 길이 구불구불 이어진 곳들을 떠올리면 된다. 그런 곳에 가야 사람사는 맛이 나고 볼거리가 남아 있다. 나는 평생을 한강 남쪽에만 살아와서 그런지 그런 곳에 가면 생경하고 정감이 간다. 다시 말하면 그곳 생활의 불편함을 모르는 철부지 시각이다.
얼마전 다녀온 딜쿠샤도 숙주와 그곳에 기생하는 사람들처럼 표현한 점도 재미있다.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작은 공간이라도 삶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경작본능이라는 도시 농업(?)에 대한 주장도 재미있다. 갖가지 재활용 창작 생활용품들도 맛깔나게 사진에 담았다. 애정어린 시각과 상상력이 없다면 시선은 그곳에 머무르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엔 용산 미군기지에 관한 사진을 보면서, 내가 군에 있을 때 사용하던 서빙고 쪽문도 나와서 깜짝 놀랐다. 서빙고 비너스 속옷회사 맞은편에 있는 이 쪽문으로 수도 없이 오락가락했는데...
이 책은 올해 읽은 책중에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건축물과 사물, 옛것과 사람에 대한 애정어린 건축가의 생각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오래된 것은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래된 것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니 강북에 한번쯤 살아보고 싶다. 애들이 대학교 가면 강 건너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