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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름의 등불

그리고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

by 제주로컬조이

가족이라는 이름의 등불아래 내 편이 하나 없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상상한 것 이상으로 깊게 일상을 지배한다. 늘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차라리 남이면 어땠을까 단단히 속상해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20여 년의 세월 동안 직접 마주 대할 때에는 단 한 번도 서로 얼굴 붉힌 적 없는 고부사이. 늘 나의 편에 서서 그리고 멀찌감치 떨어져 아들내외를 응원한 사람이 있다.


올해 5월 말, 아픈 몸을 이끌고 둘째 손자와 아들의 생일에 맞춰 아들내외 집에 놀러 오셨다. 결혼 후 통틀어 세 번째다. 오랫동안 허리가 아프셔서 장거리 나들이가 어려우셨기에 발걸음이 적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핑계셨던 걸지도 모르겠다. 영화에 나오는 뻔한 스토리라 하기엔 눈물 젖은 손수건 없이는 감내할 수 없는 쓰디쓴 추억. 가난한 집에 시집와 홀시어머니를 모시며 혹독한 시집살이를 감내하는데 젊은 시절을 온통 헌납하셨지만, 마흔 넘어 낳은 2대 독자 아들에게만은 절대 시집살이를 내리지 않겠다는 단단한 각오가 있으셨음이 분명하다.


간암 말기. 점점 여위고 나약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측은한 마음이 차오른다. 사랑한다는 말도 이젠 제법 자연스럽게 나온다. 음식 한 입, 물 한 모금이 쉽지 않은, 위태한 순간이 여러 번이다. 유한한 시간의 길에 접어들었다는 의사의 말에 가족들은 삶을 함께 보낼 날보다 이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태어나면 모든 것은 태어난 자에 맞춰져있지 않은가. 생일을 준비할 때는 늘 생일자를 위해 선물을 고르고, 생일상을 차리고 생일자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자리를 준비한다. 하지만 죽음을 준비할 땐 다르다. 남겨질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과 장례 절차, 하다못해 장례식장도 오시는 분들의 발걸음이 편한 교통 접근성이 고려 사항이다. 누구나 유한한 삶을 산다지만 이런 현실이 야속할 뿐이다.


삶이라는 가느다란 실을 붙잡고 있는 인간의 미약한 의지와 본능.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과 2년째 아내 간병으로 하루하루 살점을 떼어내는 것과 같은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시아버지 사이의 오묘한 기운에 결국 시어머니는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기로 하셨다. 이건 죄책감일까... 오늘은 차마 전화로 안부를 묻지 못한 채 무거운 돌덩이를 얹은 듯한 먹먹한 가슴으로 하루를 보냈다. 눈에서 자꾸만 눈물이 삐져나온다. 남편도 나 몰래 베개에 눈물을 떨구고 있진 않은지 오늘따라 돌린 등에 유독 마음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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