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창업을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창업을 해야 한다고 한다.
최근 화제를 모으며 끝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서도 같은 결말이었다.
매월 따박따박 들어오는 안정적인 월급에서 벗어나 불안정함에 철저히 익숙해져야 하는 시기. 그 시기에 발을 들인 나는 오늘로써 창업한 지 정확히 반년이 되었다. 20여 년간 마케터로서의 회사 생활을 뒤로하고, 홀로서기를 한다는 것이 결코 쉽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좋아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것을 해야 얼마나마 곧바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선택한 길이다.
세차장에서의 김 부장만큼이나, 온실 밖으로 나온 나는 어김없이 을 중에 을이다. 생각해 보면 늘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에 머리를 박은 채 일만 했지, 발로 뛴 영업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요즘 나는 하루에 100km 운전이 기본이다. 서귀포 동쪽에서 서쪽을 지나 제주 원도심을 거쳐 집에 오면 제주도 한 바퀴다. 차 트렁크에는 회사 브로셔와 판촉물이 잔뜩 실려있고, 언제든 약속이 잡히면 얼굴에 웃음을 장착하고 영업에 나선다. 내 회사의 대표가 되면 이름만큼이나 근사한 일이 생길 줄 알았는데, 세금계산서 떼는 일, 고객의 비위를 맞추는 일, 판촉물에 스티커를 붙이는 일 모두 다 내 몫이다. 함께 일하는 파트너가 있고, AI가 행정팀 사원, 법무팀 대리, 기획팀 과장 역할을 수행해 준다지만, 지금 내가 내리는 결정이 옳은지,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가능성이 있는지, 지금 들어오는 매출이 내일도 있을지, 잠못 들 셀 수 없는 수많은 걱정은 결국 다 내 몫인 셈이다.
남편이 아직 회사에서 꼬박꼬박 월급을 가져다주는 덕분으로 나의 이 불안정한 삶은 아직 거침없이 항해 중이지만, 현타가 오는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주저앉을 뻔한 일이 벌써 여러 번. 매출이 적어 자금난에 시달리는 00 가게에서는 창업 초기인 내가 기반을 닦으려는 걸 눈치채고 3개월 간 서비스를 무료로 해 달라고 했다 - 나는 대체 뭘 먹고살란 말인가. 00 식당에서는 1년 전 고용한 직원이 운영하던 계정에 못된 짓을 하고 나가버려, 여태 연중 휴무 중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을 했다 - 무기력한 그 모습에 나도 전염되어 며칠간 헤어 나오지 못했다. 00 매장에서는 내가 매일 광고하라고 전화 오는 네 0버 직원이 아니냐며 의심부터 하고 나섰다 - 털끝 하나라도 잘못되면 준 돈이라도 다 받아낼 심상이다.
자존심을 내려놓는다는 일.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은 결국, '서울 자가'도 '대기업'도 '부장'도 사라진 온전히 김낙수의 삶을 살기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지 않았던가.
수개월 동안 여러 자영업자분들을 만나오지만, 자영업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지라 열 군데 중 한 두 군데가 먹고 살만 한 것 같다. 직원들 월급이라도 주면 다행인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런 처지에 비하면, 상품 재고도, 직원도, 사무실도 없는 내가 상팔자일 수도 있겠다며 부쩍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우며, 주변에 귤농사로 밭을 일구는 지인들을 보며 나는 역시 몸으로 하는 일은 젬병이다 자각하고,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할 수 있음에 또 한 번 감사한다.
나의 창업 여정은 이제 전반전 10분쯤이기에 버텨보자. 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