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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그녀와의 이별

by 제주로컬조이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는 도무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남편이 입원해 계시는 병원에 다녀가고 불과 이틀 만에 어머님은 더 이상의 통화를 거부하셨고,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시아버지의 눈물 섞인 목소리에는 병원에 찾아가면 자꾸만 집에 가라며 이내 등을 돌려버리시는 어머님에 대한 원망이 새어 나온다. 어머님은 점점 말할 기운이 사그라들어 그 누구와도 대화를 원치 않으셨고, 침묵하셨다. 이제 가시려고 홀로 이별을 준비하시는 걸까. 우리와 추석은 함께 보내고 가셔야 하지 않을까. 내내 이방 저방을 서성이며, 마음을 졸인 채 그렇게 5일을 흘려보냈다.


작은 아이와 일이 있어 먼저 육지로 올라간 남편에게서 다급히 전화가 온 건 토요일 정오즈음. 고기를 굽고, 찌개를 끓여 점심을 먹으려던 차였다. 어머님이 위독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고 병원으로 급히 오라는 남편의 말에 허겁지겁 짐을 챙겨 집을 빠져나왔건만, 점심을 먹고 있던 큰 아이는 두고 왔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머님이 다시 일어날 거라는 기대였을까? 설마 임종이라니,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었을까? 금세 다시 집으로 들어온 나와 마주친 큰 아이의 눈이 동그랗다.


병원에 도착하니 이미 온 식구가 어머님을 가운데 빙 둘러 어깨를 들썩이며 함께 흐느끼고 있었다. 시댁의 삼 남매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 건 연례행사일 만큼 참 오랜만이다. 그 자리에 누구 하나 슬퍼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그날 밤 어머님은 위급한 고비를 넘기셨지만, 다음날 아침 온 가족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 심장박동기의 낮은 파동이 직선으로 바뀌고,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삐...' 소리가 울리자 우린 모두 오열하고 말았다.


임종을 한 후에도 2시간은 귀와 촉감이 열려있다고 했다. 작은 아이는 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얼굴에 입을 맞추고, 귀에 대고 "사랑해요, 하늘에서 잘 지켜봐 주세요."라는 말을 남겼다. 온 가족이 한 명씩 돌아가며 그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방 안에는 찬송가가 흘렀고, 아로마 향이 풍겼으며, 따뜻한 사랑이 감돌았다.


일주일 전 어머님이 전화 너머로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애써 목 넘긴 '사랑한다'는 말이 귀에 맴돌았다. 곡기를 끊고 곧 폐에 물이 차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던 그녀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사랑'이었다. 살아생전에 그녀에겐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가장 컸을까. 마지막 순간을 본인이 이룬 온 가족과 함께 나누고 떠난다는 건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한다. 침묵에 들어선 그녀의 마지막 바람이 가족에게서 받는 그 참 '사랑'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하늘은 푸르렀다. 마치 평소 어머님의 발랄하고 경쾌한 성격을 닮았다 했다.


집에 돌아오니 냉장고에 뚜껑도 채 덮지 않고 급하게 밀어 넣은 먹다 남은 찌게 냄비가 딱딱하게 굳어 말라비틀어져있는 모양새가 눈에 띈다. 남은 우리 내 사랑도 어머님이라는 존재 없이 말라비틀어져버리면 어쩌지 애꿎은 냄비를 씻어낸다.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흥건해 냄비가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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