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에 숨은 여러 가지 생각
지난 월요일 중학교 3학년인 큰 아이 고입 상담 일정으로 학교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학부모가 되어도 교무실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잘 방문하지 않는 낯선 곳이다. 어린 시절 출석부나 수거한 일기장을 담임선생님께 전달하거나 지각이나 학우와의 다툼 등 극히 사사로운 일부터 불미스럽다 포괄되는 일들로 혼나러 가는 곳이었던 기억이 난다. 힘을 주어 미닫이 문을 드르륵하고 여니, 자리에 앉아계시던 몇몇 선생님들의 고개가 파티션 위로 올라왔다. 그중 20대의 애 띄지만 명랑하고 당찬 담임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중앙에 놓인 원형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 '잘 지내시죠' 라 간단한 안부 인사를 주고받기 무섭게 한 가지 안 좋은 일이 있다며 시작을 열었다.
내가 오기 몇 시간 전 발생한 큰 아이와 같은 반 학우 사이의 일이었다. 일요일이었던 전날 밤 큰 아이는 얼마 남지 않은 체육 대회 준비로 반 티셔츠 투표를 진행하느라 종류 별로 이미지를 PPT에 붙이고 사이즈를 주문받기 위한 엑셀표를 뽑느라 무척 바빠 보였다. 전학 온 후 처음으로 부반장을 맡아 들떴는지 오늘은 임명장이 나온다며 등교 전부터 들뜬 마음을 얼굴에 내비치기도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오전 학급 회의를 통해 과반수 이상으로 결정된 반 티셔츠 투표 결과에 대해 점심시간 후 그 학우는 큰 아이에게 다가와 불만을 표했고, 투표해서 의견을 내지 그랬냐며 그 학우게 따지자 학우가 되려 욕설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수업 종이 친 직후 발생한 일이라 곧 과목 선생님이 반에 들어오셨고, 선생님이 수 차례 저지했음에도 큰 아이에 대한 그 학우의 폭언은 상당 시간 이어졌다고 했다. 큰 아이는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그 학우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있기만 했나 보다. 그 학우는 이미 교실을 박차고 학교 밖을 나가 사라졌다. 담임 선생님께서 큰 아이가 좀 충격이 있는 것 같으니, 집에서도 잘 얘기하고 관찰해 달라 당부하시면서 학폭을 진행하려 한다고 하셨다. "학폭이요? 이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걸까요?" 순간 활발하기만 아이가 나에게 숨기고 하지 못했던 일들이 있었는지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너무나 낯설게만 들리는 '학폭'이라는 단어.
작년에 전학 온 그 학우는 그간 선생님들과의 좋지 않은 일들로 교내 관찰 대상이었고, 학급 아이들에게 큰 피해를 주진 않았지만 학교로선 더 이상 그대로 둘 수도 없다고 했다. 처음 발생한 공공장소에서의 폭언 사건이 하필이면 큰 아이 와였다니. 큰 아이는 운동을 잘하고, 반 친구들 특히 여자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아이다. 이전에는 교실에서 자거나 무단결석 등 아이들 사이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그 학우는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큰 아이와 그 당시 반에 있던 몇몇 아이들이 진술서를 쓰고, 큰 아이에게 분리 조치 의견을 물어 긍정의 답변이 나온 후 학교에서는 학폭을 진행하려는 분위기인 것 같았다. 상담을 마친 후 아이를 기다려 같이 가려고 전화를 했더니 혼자 가고 싶다고 했다. 반 아이들에게 창피했겠지. 엄마와 가는 모습까지 친구들에게 보이면 더 자존심이 상할까 봐 굳이 강요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아이와 함께 발생한 일들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 학우가 한 폭언은 상상 이상이었다. 형들을 데리고 와 죽이겠다는 협박도 있었다. 욕 사용이 금기된 우리 집안 분위기로서는 감내하기 힘들었을 상황으로 짐작된다. 특히, 반 전체 아이들이 있는 자리에서 말이다. 큰 아이는 상황을 설명했고 지금은 마음이 진정되어 괜찮다고 했고, 또 그리 나쁜 아이는 아니라고 했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간밤에 그 학우의 사과 메시지가 큰 아이게 쇄도 했었나 보다. 이른 아침 학생부장 선생님께서 따로 전화를 주셨다. 큰 아이가 그 학우의 사과를 결국 받았고, 분리 조치도 학폭도 진행하지 않기로. 한 번만 더 동일한 일이 발생하면 그땐 가만있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부모로서 나도 이를 받아들이는지, 그 학우의 부모에게 사과를 받겠는지도 물었다. 당사자인 큰 아이의 마음이 그렇다면 나도 이 사건에 대해 대담한 마음으로 용서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 학우는 전학 오기 전까지 선수출신으로 축구를 했던 아이다. 꽤 잘해서 오랜 시간 애정을 들여 축구 생활을 했고, 축구를 더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 지방에서 홀로 중학교 생활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응을 잘하지 못하고 아예 축구를 그만두고 왔다고 한다. 전화 너머로 건너오는 그 학우 엄마의 말은 간절함 반 포기 반의 오묘함이 섞여 있었다. 사과는 확실히 했지만, 냉소적이기도 했다. 사춘기 아들의 큰 방황이 내 일이 아니었으면 하는 자조의 목소리도 느껴졌다. 내 큰아이도 초등학교 2학년까지 유소년 클럽에서 활발히 활동 후 중국으로 건너갔다. 있을지 모를 상실감에 내심 걱정이 되어 중국에서도 클럽에 보내 취미 활동으로써 열심히 지지했고,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레 다른 운동으로 관심이 건너가면서 '한국에서 어린 시절 겪었던 축구생활의 애증'이 많이 해소된 것처럼 보였다. 큰 아이는 그 학우가 그리 큰 위협이나 유별남이 있지 않다고 했다. 1학기 때 체육대회에서 같이 축구를 하면서 재밌었던 기억도 있다고 했다. 아이의 시선에서 보는 그 학우는 최소한, 아직까지는 그래도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남편은 그 학우까지 생각하는 건 오지랖이라 한다. 앞으로 한 번 더 이런 일이 생기면 무조건 선빵이 중요하다 훈계 아닌 훈계다. 선생님들은 학폭이 그 학우에게 더 좋은 처방이라 판단했을지 모르겠다. 그 학우의 엄마는 이 사건이 별 탈 없이 잘 클로즈된 것에 안도하고 있을 것이다. 큰 아이는 별 일을 겪었다며 한 동안 생각나겠지만, 으레 사내 아이들에게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듯 넘어갈 심산이다.
학폭이라는 이름. 그 뒤로 숨겨진 여러 가지 입장의 생각들
과연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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