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인 호기심 생산 시대
‘인간은 적응의 동물 -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적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찰스 다윈의 적자생존이 떠오른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변화하거나, 새로운 환경에 놓였을 때 지적 탐구 영역인 호기심이 가장 먼저 발동하고, 연이어 친밀감을 쌓으려 시도하고, 그리하여 같은 도화지에 놓인 그림 안에서 자칫 튈 수 있는 나를 자연스럽게 배치하는 최종의 노력을 하게 된다. 변화에 대한 내 나름의 생존 방식 프로세스라 여겨진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제법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서울, 중국 선전, 제주를 잇는 이동 속에 아이들은 사는 환경, 언어, 친구, 때로는 쓰는 물건까지 모든 것을 갈아 끼웠다. 그럴 때마다 거부 반응을 보이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적응해 나갔다. 언어도 얼굴 스타일도. 어른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로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다만 사는 장소가 달라지는 변화만 있는 세상이 더더욱 아니다.
삶의 방식을 또 다른 방식으로 바꿔야 하는 일들이 빠른 속도로 그리고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AGI에 대한 논란과 그로 인한 변화가 뜨겁다. 직업에 대한 관념, 자녀 교육, 자산 관리 및 노후 준비 등 삶의 모든 어젠다에 해당한다. 변화에 대한 내 나름의 생존 방식 프로세스를 작동시켜 보지만, 자고 일어나면 바뀌어있는 생성형 AI의 순위와 진화, 여기저기서 쏟아져 범람하는 다중 매체의 관련 콘텐츠들로 인해 적응 프로세스에 진입하기 조차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온다. 변화에 대한 호기심은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그것도 빠른 속도로 생산해 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적응에 대한 태도는 나이테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걸 자주 목격한다. 세상은 변화하지만, 이를 거부하는 연장자들이 있다. 굳이 적응하지 않아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굳이 그 변화에 맞춰 적응할 이유를 찾지 못한 사람일수록 기존의 자리를 더 고수하게 된다. 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한 다지만, 사람은 강산만큼 그렇게 바뀌지 않는 경우도 많으니까. 좀 더 나이가 들고, 세상이 더욱 빠르게 변화하면 나는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적응이 적자생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생존 방식을 다른 방법으로 리셋해야 하는 순간은 아닐지 의심해 본다.
일방적인 호기심을 생산해야만 살아낼 수 있는 시대. 인간에게 더 이상 호기심이라는 게 없어지면 삶의 수명이 다한 것이라는데, 미래 기대 수명이 연장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단축되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