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 5. 선택

선택의 아이러니

by Life like Joy

매 순간은 선택으로 점철되어 있고, 늘 의도했던 것의 정반대의 선택이 삶을 지배한다.


아침 6시, 어젯밤 맞춰 둔 휴대폰 알람 소리가 여러 번 울리고, 게슴츠레 한 눈을 반쯤 뜬 채 지금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계획했던 대로 글을 쓸지 말지 고민했다. 결국 잠을 좀 더 자는 걸 선택하였고, 그 대가로 아침 루틴은 또 한 번 어긋났다. 가장 쉽고, 간단해 보이는 아침 첫 일과마저도 하고자 했던 선택의 정반대의 선택으로 하루의 결과를 가르고 말았다. 내일은 과연 잘 지켜질 것인가.


매일 짐에 가서 운동을 해야지, 커피는 하루에 한 잔만 마셔야지, 하루에 10분은 책을 봐야지 등 수도 없이 이루어지는 나와의 작은 약속들은 항상 정반대의 선택으로 인해 좌절되고 만다. 내 의지가 약해서 그렇다며 매번 의지를 탓하다 보면, 그 의지가 나의 것인지 남의 것인지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러다 보면 좌절도 무감각해지고, 있던 일도 없던 일이 되고, 내가 언제 그런 생각을 했었나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내년 이 맘 때쯤 또 생각이 나겠지. 누가 봐도 머릿속에 떠도는 수많은 생각, 나와의 약속들은 모두 좋은 결과를 목표로 한 행위들인데 왜 선택의 순간이 오면 마치 누가 작정하고 말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망설이게 되는 걸까.


더 중요한 인생 일대의 선택의 순간이 오면 어떠한가. 주식은 저점에 사서 고점에 팔라고 교과서에 나와있는데, KOSPI가 최고점인 현재 저점에 팔아치운 내 주식 통장은 텅이다. 직장을 그만 둘 때는 분명한 명분과 사후 대책이 있어야 하는 게 정석인데, 팀장 때문에 화가 치밀어 다음 달 월급이 안 들어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사표를 던진 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그때도 나는 분명히 선택을 했다. 자유롭게, 그리고 처참하게.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있는 한… 어찌 된 게 자율적으로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은 어렵다. 정반대의 선택에 의한 결과를 뻔히 예측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선택은 그리 이성적이지 못하다.


타인의 강요에 의존하는 것 자체도 또 하나의 아이러니이지 싶다. 직장을 다닐 때 오전 9시까지 출근하라고 하면, 웬만해선 지켰다. 영양사가 칼같이 칼로리를 잰 구내식당 식단은 내가 때에 따라 때우는 끼니와는 차원이 다르니, 뭐 먹을까 고민하지 않았고, 학원에서 내주는 숙제는 빼먹으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꼬박꼬박 해갔다. 누가 봐도 좋은 결과를 위한 선택인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타인에 의해 반 강요된 선택이다.


이쯤 되니 모든 선택은 어느 정도 예측된 결과를 위해 하는 행위임을 전제로, 타인에 의해 강요된 선택에 의한 결과와 내 자율적인 선택의 결과 중 전자가 더 잘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간은 이리도 타의적이란 말이지. 이래서 커피를 세 잔 째 들이켜려는 나를 만류하는 남편이 필요하고, 다이어트를 위해 함께하는 트레이너가 필요한가 보다.


오늘도 매 순간 수많은 선택이 놓여있고, 어김없이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타인의 힘을 빌려서라도 글을 써보고자 글모임을 만들어 강제로 이 글을 쓰는 중이니 말이다. 결국 오늘도 나는 선택을 한다. 더 잘 선택하기 위해, 선택을 남에게 맡겨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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