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간은 저만치 흘러 나의 시간이 되고
엄마는 새치 하나를 뽑아주면 10원을 준다고 하시곤 나를 옆에 불러 앉히셨다. 작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꾹꾹 누르고 한 손으로는 헤집어 검은 머리카락 틈 사에서 흰 머리카락 하나라도 발견하면, 서툰 집게질로 검은 머리카락과 흰 머리카락 2개를 동시에 뽑았다. "앗 따가워"라고 작은 비명을 지른 엄마는 여전히 미동도 않은 채 눈을 감고 앉아있다. 톡 소리가 나며 뽑히는 머리카락도 있고, 힘없이 툭 달려 나오는 머리카락도 있다. 뽑은 새치가 잘 보이도록 엄마의 낡은 하얀 프레임에 쌓인 둥글넓적한 손거울 위에 올려놓았다. 한 개, 두 개, 세 개 소복이 늘어나는 새치에 엄마도 흐뭇하고, 나도 덩달아 흥이 난다. 짧은 새치, 긴 새치 모두 뽑기가 여간하지 않다. 짧으면 집게질이 자꾸 미끄러져 신경이 곤두서고, 길면 톡 소리가 나면서 시원하게 뽑히지 않고 중간에 힘없이 끊겨버려 김이 샌다. 유난히 오른쪽 옆통수에 짧은 새치들이 많은 걸 보니, 지난번 뽑아준 이후로 그새 자랐나 보다. 우리 엄마 나이 38세. 나는 엄마가 영원히 38세일 거라 생각했다. 새치를 뽑을 때 엄마의 얼굴은 아직 피부도 뽀얗고, 검버섯도 없는 매끈한 얼굴이었다. 이런저런 걱정, 근심으로 미간에 주름이 진 채 눈을 감은 모습에는 아직 빳빳하고 긴 속눈썹이 있고 립스틱을 바른 흔적이 남은 볼고독독한 입술도 있다.
어느새 뽑을 새치보다 남아있는 머리카락이 더 소중해지고, 새치를 감추려 하기에는 염색약이 아니면 소용이 없어진 그때, 나는 더 이상 엄마의 새치를 뽑지 않는다. 대신 나의 새치. 화장실 불빛에 비친 거울에 눈을 치켜뜬 채 어디 한 번 걸려보라며 새치를 뒤지기 시작한다. 왼쪽 위로 힐끔. 오른쪽 위로 힐끔. 눈이 째져라 찾는다. 지난번에 없던 왼쪽 구레나룻에 새치가 삐죽이 고개를 내민다. 앞머리를 뒤로 들추니 솜털인 줄만 알았던 곳곳에 희끗한 정체들이 솟아났다. '앗 깜짝이야.' 이젠 미용실에 가면 패션염색 대신 새치염색을 해야 하는지 묻게 된다. 새치 뽑는 시간에 재미난 드라마라도 보라며 핀잔주는 아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뽑아 줄 거 아니면, 잔말 말어."라고 되받아친다.
엄마의 시간은 저만치 흘러 나의 시간이 되고, 엄마의 시간이 곧 나의 시간이 되어, 집게를 찾는 마흔 넘은 딸에게 엄마가 "새치 뽑아주련"라고 물으신다. 혼자서 낑낑거리며 뒤통수에 난 새치마저 잡아들이겠다며 고군분투하는 딸이 못마땅했을까, 애처로웠을까.
엄마의 새치를 뽑아줄 땐 톡 소리 나는 쾌감과 함께 동전지갑에 예상치 못한 용돈이 채워져 신이 났다. 나의 새치를 뽑을 때도 톡 소리 나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종종 나이 탓인가 싶어 눈에 보이는 새치라도 감추려 애먼 머리카락만 못 살게 구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다. 엄마도 그랬을 거야. 큰집 종손에 없는 살림 두 딸들 키워가며, 그리고 손자들까지 건사하며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는. 그렇게 톡 소리 나는 새치 뽑는 시원함에 흘러가는 세월을 지워가며 당신의 존재를 아껴가고 싶었겠지.
화장실에서 새치를 뽑다 느닷없이 울컥한다. 엄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저만치 흘러간 것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