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넘어지지 않도록 애쓰는 합의점
균형 잡힌 몸매, 균형 잡힌 식단, 균형 잡힌 관계. 생활 속에서 쓰이는 균형이라는 말은 마치 정답을 대체하는 것 같다. 듣기만 해도 반듯하고, 흐트러짐이 없고, 누가 봐도 옳은 상태. 그런데 어쩐지 이 단어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딱딱하고 차갑다. 아마도 우리는 정확히 이와는 반대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유를 곱씹어보면, 우리가 사는 사회가 늘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국어가 좋아, 수학이 좋아. 문과니 이과니. 빨간당이세요, 파란당이세요. 따아, 아아.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분법적 선택지 앞에 서왔다. 중간은 없었다. 그 프레임 안에서 균형이란, 정확히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야만 가능한 것이다. 어느 쪽도 고르지 않는 것. 그러니 균형을 향한 심리적 거부감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학습된 사회의 문법에 저항하는 일에 가깝다.
그렇다면 균형 잡힌 삶이란 무엇일까. 일 50%, 가정 50%의 정확한 양분화가 가당키나 할까. 균형 잡힌 식단이라면, 인간의 기본적인 식욕과 본능을 매끼 통제해야 한다는 말인가. 당기는 것을 참고, 싫은 것도 먹어야 한다. 균형이라는 말은 아주 좋은 정답같이 들리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가능하지 않은 허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본능을 억누른 채 유지되는 균형은 균형이 아니라 억압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균형이라는 말이 그저 정답 같아서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균형이란 어느 한 상태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저 상황에 맞게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이 아닐지. 무게 중심의 추가 오른쪽으로 가기도 하고, 어느 땐 왼쪽으로 가기도 하면서, 그저 넘어지지 않도록 애쓰는 합의점. 그것이 균형의 실제 모습일 것이다.
균형이라는 틀에 갇혀, 그것을 벗어나는 자신을 오판하고 질책할 필요는 없다. 치우쳤다고 느껴질 때,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다음 방향을 찾는 중인 것이다. 가끔은 반문해 볼 일이다. 우리는 너무 정답만 요구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