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 7. 가치

쓸모없음의 쓸모

by Life like Joy

손이 시커메지도록 한 시간을 넘게 쪽파를 다듬었다. 찬물로 씻어내고 빨간 양념을 버무리며 파김치를 담는데, 문득 윗집 어르신이 떠올랐다. 밭에서 쪽파를 뜯으면서도 내 생각을 하셨을까. 비닐장갑을 낀 채 찬장 구석에서 빈 용기를 꺼내어 파김치를 꾹꾹 눌러 담으며, 맛이 없더라도 기뻐해주실 어르신을 상상했다. 나눔이란 누가 잘했다 점수를 매길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분명하게 가치 있는 일이다.


가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의 차이는 무엇일까. 꼭 쓸모 있는 것만 가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두 질문은 딱히 답이 없어 보이지만, 늘 해답을 찾고 싶은 인생의 물음표다.


가치라는 것은 측정할 수 있는 대상과, 그 값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금처럼 실체가 있는 것이라면 오히려 쉽다. 그러나 누군가와의 관계, 싫든 좋든 만들어진 추억, 엉뚱한 생각을 하며 흘려보내는 시간, 상대방을 위한 진실된 거짓말 같은 것들은 어떻게 잴 수 있을까.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공부하라 했던 어른들의 말을 되감아보면, 사실 그 쓸데없는 생각들이 쓸데없지만은 않았던 경우가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큰아이가 중학교 1학년 겨울 무렵이었다. 아이는 왜 모든 일에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 잣대를 들이대려 하는지, 꼭 쓸모 있는 것만 가치 있는 건 아니라며 정색했다. 그 뒤로 더더욱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아이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저 별빛이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동생과 나란히 사색에 잠겨 있는 걸 보면서도, 그 시간에 책이나 읽지 하는 말을 몇 번이고 삼켰다.


삶의 공간이 바뀌면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도 달라진다. 서울에서, 중국에서, 그리고 지금의 제주에서, 같은 상황도 다르게 다가왔다. 치열한 경쟁 속에 놓이면 자그마한 일에도 득과 실을 따지게 된다. 지하철에서 웃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사회적 도리와는 별개로 피곤한 내가 종착역까지 서서 가야 할 시간을 먼저 계산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지금 이 시간을 조금 희생하면 나중에 더 편안한 잠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다는, 다짐인지 위안인지 모를 말도 스스로에게 자주 건넸다.


여러 공간을 옮겨 다니며 다양한 삶을 살아본 덕분에, 무엇에 진정한 가치를 두어야 할지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윗집 어르신이 대문을 두드리며 밭에서 방금 뜯어온 쪽파를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며 큰 봉지를 내밀었다. 손질이 번거로운 줄 알면서도 젓갈 냄새 풍기는 파김치를 떠올리며 욕심을 내어 바구니에 옮겨 담았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누군가의 럭셔리 리조트 사진도, 반포로 이사 갔다는 후배 소식도, 승진했다는 친구의 골프 프로필 사진도, 이제는 조금 시들해진다. 가치란 늘 답을 낼 수 없는 물음표이기에, 오늘의 나에게 중요한 것이 내일은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그 새로운 깨달음에 설레는 이 시골 생활이 때로는 만족스럽다. 혼자 질문하고 혼자 답하며 웃을 수 있는 내가, 가끔은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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