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술인도 알아본..
지난가을, 우연히 역술인에게 나의 사주를 본 일이 있다. 주체성 또는 자아의식이 강해서라고 이유를 둘러대야 할까, 아무튼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하느님, 부처님 또는 무속인을 찾는 일은 좀처럼 내게 없는 일이다. 외관상 지극히 평범한 60대를 지나고 있는 듯 보이는 그는 무엇을 물어보고 싶은 지 본인에게 3가지 질문을 하라고 했다. (무엇을 알고 싶은지 일 수도 있겠다.) 영업 차 전시 부스를 돌아다니다가 마주친 상황이기도 했기에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었던 나는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도무지 입을 떼기 어려웠다. 태어난 시간도 생각이 나지 않아 전화로 다급하게 친정엄마에게 물어 그녀가 어안이 벙벙해지기도 했다.
그는 나의 생시를 받아 적은 후 A4 용지 한가득 쉼 없이 나의 스토리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사주에 타고난 본질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그에게 한 질문은 ‘나는 개인 사업이 맞는 사람인가?’였다. 질문을 하고도 나 자신이 좀 우스꽝스러웠다. 이런 걸 물어보면, 저분이 어떻게 알아맞힌담… 사실 역술인을 만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남편이 중국 심천으로 발령받기 1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남자친구 문제로 사주를 봐야겠다는 절친의 손에 이끌려 동네 인근 스타벅스에서 역술인을 만났다. 그 역시 지극히 평범한 50대를 지나는 중년 아저씨였다. 출장 사주를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도 역시 의심이 있었다. 뜬금없이 내게 곧 큰 이동 수가 있다며, 대륙으로 이사 갈 수 있겠다고 했다. 그런 일이 정말 있겠냐며 사주 결과가 실망스러웠던 그 일 이후 머지않아 중국으로 가게 되었다. 사주에 정말 그런 이벤트들이 정해져 있다니 말이 돼? 믿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난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역술인의 말조차도 의심이 드니. 어린 시절 아버지 사업체가 사기꾼에 넘어가는 그때부터였을까. 친구가 학교 앞에서 화장품 다단계의 꼬임에 넘어가 신용카드를 만들고 12개월 할부를 하는 바람에 그 일을 해결하겠다며 나섰을 때는 이미 그랬을까. 사회를 바라보는 냉소적인 시각과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불신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 의심의 총알이 장착되어 있는 사람이 되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이 아니라면 속마음을 꿰뚫어 보려 하거나 의도를 짐작해 보는 일도 종종 있다.
역술인이 말했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 사업에 도움을 받을 거라고. 의심이 많아 크게 잃을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크게 대박이 날 일도 없겠다고 했다. 의심과 대박이 양끝에 서있는 정반대어처럼 들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믿고 저지르는 대범함, 위험을 감수하는 배짱이 없다면 안정형을 추구하는 작은 사업가가 되겠지. 역시 뻔한 결론이었다.
돌다리도 한 두 개는 두드리고 건너라는 속담이 있듯, 의심이란 영 나쁜 버릇만은 아닌 걸 잘 안다. 눈 뜨고도 코 베어가는 세상에 어떤 일을 할 때 가정으로라도 의심을 해 본다는 건 그 사건에서 한 발짝 떨어져 감정을 배제하는 일 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하다면 지나친 걱정과 불안으로 확장되겠지만, 적정하다면 더 크게 닥칠 위험을 피하는 일일 수도 있다. 나를 소심하게 만들 수 있는 그 의심은, 그래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누군가 또는 무엇의 호구가 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데 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을까.
역술인이 한 그 말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의심’이라는 단어가 내 인생을 어떻게 보완하고 완성해 갈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