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봄 냄새가 났다.
내게 봄 냄새는 꿀의 향기와 같다. 시골에서 양봉을 하는 부모님은 봄이 되면 분주해진다. 인적이 드문 꽃 군락지를 찾아 꿀을 따러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4월이 되면 아카시아 나무가 빼곡한 숲 이곳저곳을 찾아다닌다. 아카시아 꽃잎이 지고 나면 밤꽃을 찾아 나선다.
갓 수확한 아카시아 꿀은 산뜻한 향과 은은한 달콤함 이 일품이다. 밤꿀은 알밤의 껍질에서 꿀을 짜낸 것처럼 색이 짙고, 비릿한 향이 나면서 맛도 씁쓸하다. 아카시아꿀이 가볍고 산뜻한 봄의 향기라면, 밤꿀은 짙은 가을의 색과 향이 난다. 그래서 나는 봄 냄새가 가득한 아카시아 꿀을 더 좋아한다.
단단히 밀봉된 꿀병의 뚜껑을 막 열었을 때 콧 속으로 밀려 들어오는 향기에 취해 버린다. 코가 뻥 뚫릴 만큼 시원하고 상쾌하다. 꿀병에 수저를 푹 담가 꿀을 크게 한 수저 퍼 올리면 꿀이 자꾸만 아래로 미끄러지듯 흐른다. 꿀이, 봄 향기가 더 도망가버리기 전에 재빨리 맛을 봐야 한다.
아카시아 향이 입 안을 가득 메운다. 달콤함은 덤이다. 싱그러운 향기에 취할 것 같은 기분. 이것이 내게는 봄 냄새다.
몇 해 전 봄, 부모님이 내가 살고 있던 천안으로 꿀을 따러 온 적이 있다.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우연히 천안 IC 근처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 군락지를 발견한 것이다.
며칠 뒤에 부모님은 포터 차량에 꿀통을 가득 싣고 다시 올라왔다. 새벽부터 출발해 아침밥도 걸렀을 것 같아 김밥을 사 들고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갔다.
진입로를 겨우 찾아 비탈길에 차를 대고 산에 올랐다.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니 제법 넓은 평지가 나왔다. 평지는 고속도로 옆에 바싹 붙어 있었는데 그 경계를 구분하는 건 낮게 설치된 회색 가드레일 뿐이었다. 근처에서 교통사고가 나거나 운전자가 방심이라도 한다면 언제든 차가 가드레일을 넘어와 사람을 덮칠 만큼 위험해 보였다. 차들이 매섭게 달리고 있었다.
불안과 아찔함이 엄습해 오려던 찰나에 익숙한 향이 났다. 엄마의 말처럼 산에는 아카시아 나무 천지였다.
나무의 외형을 보기도 전에 내 코를 점령한 향기를 맡고 나서 나무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가지마다 줄지어 열린 꽃잎에서 산뜻하고 달콤한 아카시아 특유의 향이 강하게 풍겨왔다. 어렸을 적에 좋아하는 아이가 생기면 아카시아 가지를 툭 꺾어서 ‘좋아한다, 안 한다, 좋아한다, 안 한다...’하며 마음을 점쳐보곤 했기에 아카시아 향은 내게 고백의 향이기도 하다.
살갗을 간지럽히는 바람이 아카시아 꽃향기를 실어 나른다. 본연의 꽃 향기는 꿀의 냄새보다 가볍고 싱싱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꽃잎을 바라본다. 하얗고 작은 꽃잎이 마치 포도송이처럼 매달려 있다. 꽃을 따서 입안에 넣으면 꿀과 똑같은 맛이 날까. 가까이 다가가니 꽃 향기에 취할 것 같았다. 내게 봄 냄새란 벚꽃이나 개나리 꽃의 향이 아니다. 맛과 향으로 나를 달콤함에 빠지게 할 아카시아의 향기다.
꿀통에서 벌집을 꺼내고 있는 부모님이 보인다. 혹시 모를 벌의 습격에 대비해 온몸에 보호장비를 두르고 작업에 열중하느라 내가 온 줄도 모른다. 빨리 가서 김밥을 전해 드리고 나는 꽃구경을 더 해야겠다. 조금 걸었더니 땀이 나기 시작한다. 여름이 코 앞에 다가왔구나.
내게, 봄 냄새는 이렇게 늦게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