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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희 May 07. 2023

인생 책이 뭐예요?

"언니는 인생 책이 뭐예요?"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회사 후배가 불쑥 내게 물었다. 질문을 받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문제는 '이 책이 나의 인생책이야!라고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책이 떠오르지 않는 거였다.


데미안도 좋았어. 피터비에리의 자기 결정도 좋았고,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를 고르면 너무 가벼워 보이려나? 왠지 책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고전이나 베스트셀러를 골라야 할 것 같았다. 짧은 순간에 그 간 읽었던 책들이 하나 둘 스쳐갔다. 


피터비에리의 '자기 결정'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때 읽는 처방전 같은 책이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할 때 멘토의 조언이 듣고 싶어 진다. 그럴 때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펼친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싱클레어가 된다.

 '모든 사람의 삶은 제각기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야. 그러니 알을 깨고 나와 온전히 너 자신이 되어봐.'라는 데미안의 충고에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다. 


회사일이 힘에 부치거나, 새로 맡은 업무를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때는 제현주의 '일하는 마음'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치사하고 더러워 그만두고 싶을 때도 깊이 생각하지 말고 그냥 꾸역꾸역 하면 되고, 계속하다 보면 그것만으로도 이르게 되는 경지가 있다'는 것. 전문성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인정이라면 '탁월함'은 자발적인 동기부여를 통해 스스로 쌓아가는 역량이라고 말하는 작가처럼 나도 탁월해지고 싶어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누군가를 찾아가 인생 상담을 하고 싶어 질 때면 임경선의 '태도에 관하여'라는 책을 찾는다. 현실적이고 냉철한 조언으로 좌절의 늪에 빠져있는 나를 구원해 줄 사람 같아서다. 그 책에서 건강한 마음으로 나를 잘 살아가게 할 삶의 태도들인 자발성과 관대함, 정직과 성실을 배운다. 주변에 임경선 작가 같은 언니가 있다면 아마 졸졸 따라다녔을 것 같다. 


깊은 밤, 소울메이트와 툭 터 놓고 대화를 하고 싶지만 마땅한 상대가 없을 때는 요조와 임경선의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를 읽는다. 두 여자가 주고받는 거침없고 솔직한 내용의 편지글을 읽고 있노라면 나도 허심탄회한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누군가를 찾고 싶어 진다. 특정 주제로 시작된 여자들의 대화가 물꼬를 터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듯 이야기가 확장되는 과정을 읽으며 여자들의 연대와 우정을 생각해 본다. 


육아와 일에 지쳐서 고유한 나 자신이 지워져 가는 느낌이 들 때는 책장에서 은유작가의 책을 꺼낸다. 밥벌이로 시작한 글쓰기이지만 끊임없이 읽고 쓰는 삶을 살아온 은유작가는 생활형 글쓰기의 달인이다. '글쓰기의 최전선'과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같은 책을 읽고 있으면 여성이, 엄마가 겪는 고단함이 세련된 단어와 문장으로 내 안에 들어와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 진다.  


여행을 말하는 책이라면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어봐야 하고.. 현실정치에 신물이 날 때는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깔깔깔 웃으며 읽어야 하고..

아. 이 밖에도 때에 따라 읽어야 할 책들과, 나의 인생 책이 너무 많다. 



짧은 순간 고민하다 후배의 질문에 대답할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인생 책? 딱 한 권을 꼽으려 하니 어렵네.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의 인생 책이 바뀌었던 것 같아." 

두리뭉실한 대답이지만 사실이 그랬다. 우리의 대화는 서로 인생 책으로 꼽을 만한 책이 있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식당에 들어가느라 대화를 더 잇지 못했다. 


인생 책이 꼭 한 권일 필요는 없지만 내 인생의 베스트셀러들을 찾아 정리해 두면 좋을것 같다. 

세월이 지나면서 감흥이 떨어지는 책들도 있지만 너무 좋아서 두고두고 펼쳐보고 싶은 그런 책들 말이다. 곁에 두고 싶은 책과 문장들을, 오늘도 찾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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