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습관이 있다. 옳고 그름을 구분하고 좋고 싫음을 따지는 분별심이 가장 큰 습관이다. 이건 우리가 의식을 하든 하지 않든 뇌에서든 몸에서든 일어나는 작용이다.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힘든 것과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가장 큰 고통이 아이러니하게도 분별심이다. 이 분별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만 있어도 내가 어떤 생각에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도 그 사람은 조금은 마음의 중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새해가 되고 사람들은 일부 뭔가 목표를 가지고 몸을 관리한다든지 또는 뭔가 발전적인 곳에 열성을 가지게 된다. 아이러니하게 이렇게 의지를 일으켜서 할 때는 가족모임, 친구모임도 참 많고 생각보다 동력이 길지 않다. 뭔가를 하나 체득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정말 영혼을 갈아넣든, 내 아상을 갈아넣든 누군가와 씨름하는 기분이 드는 게 맞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를 사랑하고 싶어서 도전했던 일은 전부 실패, 일부 실패, 99일째 실패 등등으로 도돌이표가 된다. 이 또한 그냥 잘 안된다고 판단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을 편집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잘하고 있을 때는 나 자신이 떳떳하고 드러내고 싶다. 그렇지만 나 스스로 세운 약속조차 지키지 않을 때는 그 누가 질책하지 않아도 저 스스로가 자신을 숨기고 싶어진다. 자신감은커녕 오히려 자책을 하게 된다.
하나의 챕터만 보면 그렇지만 다채로운 일상은 분야마다 도전을 일으키는 일이 많다. 그때마다 단계별로 난이도가 느껴진다. 내 감정이든 관계로 오든, 일상의 복잡한 사건을 끌어오든 그다지 반갑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을 보게 된다. 그 성장이라는 지점도 자신이 정한 기준이 있을 것이다. 돈을 기준을 잡아도 어떤 사람은 모으고 싶은 목표 금액이 있고 또 다른 사람은 빚을 갚는 것이 기준일 수 있다.
그걸 보고 있는 관찰자들이 한마디 할 때마다 그 비교, 분별심이 더 상처를 받는다. 내 친구나 가족, 남편, 아내, 아이들은 그나마 지나가는 관찰자 일뿐이다.
나의 변명까지 지켜보는 나 자신의 판단이 가장 무섭다. 자신을 가장 기쁘게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질책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정말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이기도 한다. 긍정적인 채찍이 아니라 스스로 궁지에 넣고 감추고 싶어지기도 한다. 바닥이 아니라 굴을 파기 시작할 때 우울이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되는데 그 인생은 참 길고 승패가 없다. 어떤 사람을 죽음의 방식을 기준으로 잘 살고 못 산 것을 따지지만 그것 또한 편협한 관점이다. 그렇게 따지면 독립 운동가나 수많은 목숨 바쳐 싸운 장군들과 병사들이 생각하는 죽음 너머의 가치를 볼 수 없는 것이다. 우린 대체로 평범하고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우리의 애국심을 불태울 만큼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다. 요즘의 고민들은 대체로 고만고만한 일상 속에서 감정적으로 비교 분별심에서 온다는 것이다.
비교분별심을 버릴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런 나를 통째로 끌어안고 통합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유튜브를 보면 참 아름답게 찍힌 게 많다. 자연스럽다고 찍은 것들도 알고 보면 고르고 골라 그래도 보여줄 만한 면면이다.
꼭 우리 모습 같다고 생각하는 리얼 다큐들도 모습만 자유로울 뿐 '자연스럽게 편집된' 편집자의 의도대로 시청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도 일상을 좀 더 무미건조하게 편집할 필요가 있다. 아예 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안 한다고 하면 이미 성불을 했거나 자신을 그렇다고 인정조차 못하는 사람일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듯 조금은 덤덤하고 주어진 일을 하듯이 나의 잘못도, 좀 보여 주기 싫은 부분을 내가 알지만 넘어가주는 자신이 필요하다. 실패할 때마다 자신을 자책하는 것도 자책을 하는 자신을 다시 관찰해 보는 것도 내가 그렇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도 필요하다.
편집하지 않은 모든 하루의 과정을 알고, 있는 자신의 날것을 그냥 보통의 시선으로 지켜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언제나 가로등처럼 자리하고 있는 화단의 꽃밭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규칙과 날씨의 변수와 잿빛에 가까운 푸른 잎의 수모를 지나서야 어느 봄날, 내 시선에 도착한다. 그때는 그들도 늘 그런 것처럼 반짝인다. 우리는 수많은 과정 속에 있는 자신을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맨날 잘하지 못해도 그것도 나 자신이다. 어쩌다 잘 해내도 나 자신이다. 그런 자신을 응원해 주자. 이제 3월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각자의 꽃송이를 펼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