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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히 Oct 24. 2018

작은 것들

2018. 10. 24

나는 어려서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런 내가 제일 좋아하던 게 바로 방학숙제. 해마다 여름, 겨울이면 찾아오는 만들기 방학숙제는 안 그래도 꼼지락거리는 걸 좋아하는 내게 꿈과 희망의 나래를 펼칠(?)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던 것이다. 당시 만들었던 수많은 창조물(?) 중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을 꼽으라면 단연 자판기를 꼽을 수 있는데, 당시 내 머릿속의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만든 나름대로 아주 과학적이고 실용적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별거 없었다. 버튼을 누르면 해당 물건이 나오는 원리. 기계적인 분야로 특별한 재능은 없었지만 기필코 만들고 말리라는 생각으로 집 근처 박스부터 주어와 만들기 시작했던 그 자판기. 여러 가지 물건을 넣어놓고 싶었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혀 한 가지 물건밖에 넣지 못했지만, 과정이야 어찌 됐든 누르면 나오는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자체만으로도 희열에 몸부림쳤던 지난날의 내가 있었다.


무언갈 만드는 걸 좋아하는 취미는 아직도 남아있는데, 단편적인 예가 최근 유행하는 미니어처 하우스를 만드는 일이다. 주로 특정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는 관련 소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보기엔 쉬워 보이는 것들도 종이를 하나하나 자르고 작은 나무 조각에 풀칠을 해가며 완성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과정이 즐거운 것이다. 엄지손톱만 한 의자, 새끼손톱만 한 액자, 샤프심 같은 화분 줄기를 다듬으며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하고 있다 보면 2,3시간은 훌쩍 넘기기 일쑤다. 



가장 최근에 완성한 식물 가득한 정원. 수십개의 화분 만드는 게 가장 빡치는(?) 작업이다.


결혼 후 남편이 생일선물로 준 DIY의 첫 번째 완성작. 과연 생일선물이었을까, 생일빵이었을까.
처음으로 만들어본 DIY 패키지. 이쑤시개를 깎아 만든 연필에 특히 애정을 갖고 있다.


요즘엔 사람들의 취미도 다양해지고 그에 따른 DIY 제품들이 많이 나오면서 원하는 걸 만든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지만,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이런 작업들을 하기 위해서는 공구 하나부터 재료까지 일일이 구매하러 돌아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이 늘 동반했다. 부직포로 된 컵받침에 꽂혔을 때는 펀칭기와 가죽끈을, 밸런타인데이에 꽂혔을 때는 초콜릿을 만드는 부재료들을 구입하러 동대문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녔었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귀찮은 과정이 전혀 귀찮지 않게 느껴졌던 건 내가 만든 이 무언가의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나름 유용하고 쓸모 있는, 혹은 소소한 기쁨을 준다는 생각을 하며 꼼지락거렸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적성 같지 않은 적성은 결국 대학의 전공학과를 선택하는 데에서 크게 기여(?)했으니, 난데없이 인테리어과에 진학하게 된 것이다. 7차 교육과정이 처음으로 도입된 나이로, 문과와 이과 사이에서 '나는 건축을 할 테야' 라며 같잖은 독기를 품고 의기양양하게 이과를 선택했으나 초등학교 이후 멈춰버린 나의 수학적 사고능력 앞에 무릎 꿇고 결국 그와 비슷한 인테리어과를 지원하게 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알만한 대학의 건축과는 수학이나 과탐 점수를 요구했는데, 고3이 되어서 문과로 전향해버린 나는 더 이상 수학이나 과학과의 연을 이어나갈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설령 이과에 남았다 한들 입시 문턱을 기웃거릴 수 조차도 없는 성적이었으니 할 말은 다 한 셈이다. 어찌 됐건 나는 유년기의 취미를 살린 인테리어과에 진학하게 되었고, 대학생활은 나에게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가구를 디자인하거나, 건축물 모형을 만들거나, 인테리어 실습을 하는 날이면 그날의 수업 재료를 사면서부터 이미 마음이 구름을 타고 있었으니 말이다.


재밌는 건, 이렇게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내가 지금은 그런(?) 쪽과는 전혀 상관없는 직업으로 벌써 11년째 월급쟁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글 쓰는 것도 좋아하는 분야이긴 하나, 사실 따지고 보면 나는 기획자가 되고 싶었다기보다는 영상의 CG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실제로 어느 영상 제작회사의 CG팀으로 입사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기획팀으로 부서변경을 하게 되었고 결국 오늘에 다다른 것이다.


인생이라는 게 이처럼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나는 분명 무언가 꼼지락거리며 만드는 걸 좋아했던 열 살의 꼬마였고, 한때 유행했던 러브하우스라는 프로그램을 보며 인테리어 거장의 꿈을 꾸던 스무 살 대학생이었다. 지난 삼십 년의 인생에 있어 정해진 정답은 없었다. 우연찮은 기회 혹은 피치 못할 사정이라는 것들이 수시로 내 인생에 들락날락거리며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유년기와 학창 시절과 몇 번의 이직을 거쳐 지금에 다다랐을 것이다. 그런 우리가, 과연 청소년들에게 '네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라고 할 수 있을까, 갑자기 그런 의문이 든다.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는 걸, 어쩌다 보니 할만한 일을 찾았는걸. 어느 순간의 작은 것들이 모여 결국엔 이런 내가 되었는 걸. 미래의 내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리며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가서도 비슷한 회상을 할 것 같다. 나는 그저 내가 좋아했던 작은 것들을 하다 보니 지금이 되어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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