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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히 Aug 28. 2022

제주는 귤로 완성됩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귤 재배 1번가라구요

기껏 해서 3박 4일, 길어야 5박 6일 정도로만 오던 제주도에 한 달 동안 있으려니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한 일과 중에 하나였다. 여행 기간이 짧다면야 무수히 많은 박물관 중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들을 몇 군데 추려서 가면 되지만 무려 30일이라는 긴 일정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물론 제주도에 있는 박물관의 수는 30개를 넘는다. 하지만 이 모든 박물관에 갈 건 아니었고, 어느 정도 주제 자체에 관심이 있거나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곳들을 1차적으로 정리를 해야 할 필요는 있었다. 미리 얘기해두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정리따윈 하지 않았다. 매일매일의 일정은 전날 잠들기 직전에야 부랴부랴 검색해서 알아보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정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이건 진짜 제주도에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박물관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감귤박물관이었다. 


대한민국 사람 중에 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귤 철이 되면 박스채로 사다 놓고 까먹는 귤 맛이 그리도 일품인데 귤의 고장인 제주도까지 와서 귤 박물관을 가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남편에게 일장 연설을 쏟아냈다. (그렇게 연설을 쏟지 않아도 남편은 내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데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같이 갈 사람이었지만, 뭔가 박물관 선택에 자신감이 2% 정도 부족할 땐 나도 말꼬리가 길어지는 것이다.) 단지 나는 귤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제주도는 그 귤의 본고장(?)인 격이니 필수적으로 가봐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특히 특정 지역이나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소소한 기념품을 사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감귤박물관은 거의 Best of Musium 같은 존재였달까? 귤에 관한 모든 정보와 각종 기념품이 즐비할 거라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첫 발을 내딘 감귤 박물관.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박물관의 일부 공간이 공사 중이라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던 시즌이었다. 박물관의 어느 곳에 어떤 공사를 하고 있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해당 공간이 제대로 완성되고 난 뒤에 만난 전시관은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었을 거라는 추측을 해본다. 왜냐하면... 다른 전시관들이 생각보다 괜찮았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귤 재배가 언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고증부터 각 지역별로 재배되는 서로 다른 품종들의 귤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고, 귤의 다양한 향기를 맡아볼 수 있는 곳도 마련되어 있어서 뭔가 신선함을 느끼기도 했다. 전시된 내용 중에 특히 맘에 드는 부분은 다양한 귤의 종류를 알려주는 파트였는데, 생각보다 이 귤이라는 녀석의 종류가 정말 다양했다는 점에서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어른인 나도 이렇게 놀랄 정도로 귤의 종류가 많은데, 귤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다면 얼마나 까무러칠 정도로 좋아할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귤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가장 평범하게 생긴 그 귤이나 오렌지, 유자 정도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귤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간 제주도에 놀러 오면서 가족 친지들에게 한라봉을 선물하기도 했지만 정작 나는 '한라봉'이라고 불리는 귤을 제대로(?) 먹어본 기억은 없었고, 개중에 OO봉으로 불리는 몇몇 귤들을 몇 조각 먹어본 것이 전부였다. 귤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이렇게 귤에 관심 없고 홀대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애석하게도 평생을 주먹만 하거나 혹은 그보다 작은 귤들만 먹어왔던 터라 이곳에서 만난 다양한 귤의 종류에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감귤박물관에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다양한 귤 종류들도 볼 수 있었는데, 식용으로 먹는 귤들도 있지만 독특한 생김새와 색깔로 관상용으로 보는 귤들도 더러 있었다. 그중에는 진짜 독특하게 생긴 귤 하나가 있었는데, 불수귤이라고 불리는 귤이었다. 마치 부처님의 손가락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 이름처럼 귤의 결매가 손가락처럼 가닥가닥 뻗어 나와 있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다. 가끔 사진으로만 봤던 것 같은데 실물을 보니 생각보다 열매가 커서 놀랐다. 감귤박물관은 건물의 내부와 외부 모두에 다양한 귤나무들이 있는데, 귤 박물관답게 입구에서부터 귤나무에 귤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실내에 있는 온실정원에는 각양각색의 귤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는데 그 종류와 수가 정말 헤어릴 수 없이 다양했다. 비록 모든 귤을 다 식용으로 먹을 수는 없었지만 상큼 달달한 귤의 향기만으로도 이미 맛을 본 것처럼 싱그러움이 가득 느껴졌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서 빠질 수 없는 코스 중 하나인 기념품샵을 들어갔다. 역시 감귤 박물관답게 귤에 관한 다양한 먹거리와 기념품들이 즐비했다. 개중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귤 관련 제품들도 몇몇 있어서 선물도 할 겸, 먹어도 볼 겸 몇 가지를 구입했다. 이곳에는 기념품샵뿐만 아니라 감귤 피자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있었고, 감귤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족욕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날씨가 흐린 탓에 관람객도 거의 없고 대부분 어린이들이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 두 가지 체험 프로그램은 경험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감귤 피자라는 녀석, 꼭 먹어보고 싶다. 감귤족욕도 꼭 해보고 싶다. 아아, 체험하지 못한 프로그램에 대한 이쉬움이여!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감귤을 재배하는 농가에서 직접 귤을 판매하는 경우도 있고, 마트 등에서도 다양한 귤이 판매되는 걸 볼 수 있다. 우리는 농가 직매장과 농협 하나로마트 두 곳에서 귤을 사 먹었는데 가격 면에서도 품질면에서도 큰 차이는 없다 보니 가까운 곳에서 아무 귤이나 사 먹어도 맛있게 잘 먹을 수 있는 듯하다. 보통 귤은 겨울철을 대표하는 과일로 따끈한 바닥에 누워 귤 박스를 앞에 놓고 손가락에 노란 물이 들 때까지 정신없이 까먹어야 제맛인데, 생각보다 귤은 사시사철 만나기 쉬운 과일이었다. 물론 제철에 재배되는 귤들도 맛있겠지만 최근에는 귤들의 품종이 다양해져서 봄을 지나 여름과 가을에 맛볼 수 있는 귤들의 종류도 많다. 한라봉, 천혜향, 황금향, 레드향 같은 귤들은 이미 유명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고 즐겨 먹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 제주도에서는 '카라향'이라는 이름의 귤을 처음 먹어보게 되었다. 비교적 최근 들어 알려진 품종인데, 다른 귤 맛과 비교해서 더 단맛이 나는 게 특징인 귤이라고 한다. 통상 4월부터 수확을 시작해서 6월 정도까지 맛볼 수 있는 귤로, 내가 봄을 보내던 4~5월에는 카라향 재배가 한창이던 시기였다. 일부러 찾아 먹게 된 것은 아니고, 마라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선착장 앞에서 근처의 농협에서 나와 외판을 하고 있던 것을 구입하게 되었다. 처음엔 '카라향이 뭐지?' 하는 호기심에 마라도로 향하는 배 안에서 검색해보니 맛있게 먹었다는 사람들의 글을 보게 되었고, 돌아 나오는 길에 한번 맛보자는 생각에 7~8개의 귤이 들어있는 봉지 하나를 덥석 들어 구입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와 하나 까먹어 보니 세상에 이게 웬걸?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맛과 향이 아니던가! 후숙으로 먹으면 단맛이 더욱 배가된다고 했는데 내가 먹은 귤은 초기에 수확되어 그런지는 모르지만 단맛과 신맛이 아주 적절하게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맛이었다. 그동안 먹어본 귤 맛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고, 심지어 너무 맛있었다. 결국 제주도를 떠나기 며칠 전, 오일장에 나가 시댁에 한 상자, 엄마에게 한 상자 보낼 귤을 사고 우리 집에도 가져갈 한 상자까지 3박스를 구입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귤이 다 사라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주 숙소에서 먹어 없애버린 귤이 두 박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먹은 귤이 또 한 박스. 우리는 올봄에 총 3박스의 귤을 맛있게 먹어치웠다. 


제주도에는 귤 농사를 짓는 집이 많다 보니 '너희도 귤 키워?'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그럴 때 제주도민이 하는 말은 '맞는 말이지만 우리 집은 귤 안 키워. 근데 집 앞에 귤나무는 있어.'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작정하고 귤을 재배하는 농가는 아니지만 제주도의 곳곳에 속속들이 자리 잡고 있는 귤. 따뜻한 날씨와 바람과 맑은 물이 빚어낸 이 새콤달콤하고 맛있는 귤에 대해 깨알같이 알아볼 수 있는 감귤 박물관까지. 제주도는 정말 귤을 빼고선 무엇도 논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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