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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칸테 May 19. 2021

죽어도 못 보내 내가 어떻게 널 보내

서정 오페라<브람스....>

가려거든 떠나려거든 내 가슴 고쳐내


이번 공연은 창작오페라다. 클덕들에게 익숙한 장르이긴 하지만 창작 작품이라 공연장을 귀호강 숙박업소로 만들까 봐 망설였는데.... 1주일 전 잠 안 온다고 잉어파크를 들락거리다 즉흥적으로 질렀다;; 다음날 일어나서 내가 어제 무슨 짓을 한 거야 했지만 공연 날짜가 너무 임박해서 취소했다간 돈을 따따블로 날릴 판이었다. 지긋지긋 집구석에서 탈출할 겸 다녀오기로 한다.

 


지하철에서 내리니 남산타워가 반겨준다. 무도 서울구경 특집이 생각나는 건 기분 탓이다. 2007년 서울구경 특집은 남산 팔각정까지 선착순으로 오라는 미션을 시작으로 다양한 미션이 나왔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한 다른 멤버들과 달리 명수 옹은 당시 살던 여의도에서 남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패기를 보여줬다ㄷㄷ 물론 예나 지금이나 저질체력인 명수옹답게 원효대교를 건너자 중간중간 녹초가 돼서 몸져누웠다. 게다가 다른 멤버들이 쉽게 올라온 팔각정 앞 경사로도 찾지 못해 천국의 계단으로 자전거를 들고 올라가기까지 했다. 당연히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할 도전이겠지.



지금 다시 보면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생활상도 엿볼 수 있는 특집이다. 핸드폰으로 할 수 있는 건 전화 문자 게임 (발퀄) 사진 찍기뿐이라 종이지도와 노선 안내도만 보며 길을 찾고 지나가던 시민들에게 길을 물어보는 장면도 자주 나왔다. 지하철역에 스크린도어도 없어서 띵띵띵띵띵 경보음 뒤에 안전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나라는 멘트도 나왔었다. 버스 정류장에는 잠시 후 도착 버스 전광판도 없다 보니 형도니는 도로를 가로질러 정류장을 떠난 버스에 타기까지 한다. 요즘은 정류장이 아닌 장소에선 버스 문을 절대 열어주지 않으니 따라 하지 말길 바란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싼 호텔인 통일신라 호텔도 보인다. 공연 보러 가는데 호텔이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길 잃었을 때 이정표가 되니 고마운 존재다.


정류장에서 내리니 반얀나무 호텔부터 반하를 외친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탄 버스가 다른 노선처럼 건너편에서도 똑같이 오는 버스인 줄 알았는데 순환버스는 전혀 그러지 않는다;; 국립극장 셔틀버스가 다니는 시간대라면 꼭 타길 바란다. 한 정거장밖에 안 가지만 걸어서 가면 30분이나 걸리고 일반 버스노선은 배차간격이 길어서 믿을 게 못 된다.


국립극장의 메인 요리는 썬오름극장이지만 6월까지 리모델링 공사 중이라 손님을 안 받는다. 다음을 기약한다.


문오름극장은 예당 음악당보다 아늑한 로비를 갖춰 3355 오는 지인 잔치가 눈에 겁나 잘 띈다. 혼공러라면 모름지기 당당하게 걷기를 시전하자. 내 돈 내고 떳떳하게 왔으니 꿇릴 거 없다.



창작 작품이라 저작권이 중요해서인지 공연 시작 전에 촬영 금지를 귀와 눈에 너트가 박히도록 안내한다. 그러니 찍지 말라면 찍지 말자.



예매할 때 오른쪽 s석밖에 안 남아서 스피커만 실컷 보다 올 줄 알았는데 다행히 돈 값을 제대로 하는 자리였다. 성악가들 표정이 어렴풋하게나마 보이고 지휘자의 손짓도 겁나 잘 보였다. 예당 콘서트홀을 상상한 모 블로거 경기도 촌놈 2차 인증


자리에 앉자마자 오케스트라 리허설하는 소리가 내 심장으로 비트를 쳤다. 오페라길래 예당 오페라하우스처럼 오케스트라 피트가 있는 구조를 상상했는데 국악&한국무용 위주 공연장에 그런 게 있을 리가.... 덕분에 지휘자쌤 정수리만 보고 오는 줄 알았는데 너튜브에서 본 것 같은 생생한 지휘를 감상하고 왔다 bb  



예당 음악당과 달리 영화관처럼 시작 전 비상대피경로 설명 영상이 상영된다. 설마 뭔 일 나겠어 싶지만 십몇 년 전 예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 중 무대에 불난 사고만 봐도 안전불감증은 안드로메다로 보내는 게 좋겠다.






대략적인 구조는 오케스트라를 둘러싼 계단에 천당 같은 합창단 단상, 구석에서 나갔다 들어갔다 하는 업라이트 피아노였다. 연극적인 요소가 중요하면 아쉬워하겠지만 지휘자 보러 오페라 오는 팬이나 음악 들으러 오는 클덕에겐 오 좋은데스러운 구성이다.(그게 누구라고는 말 안 했다)



공연 주제는 죽어도 못 보내 by 브선생님 이다. 클라라쌤이 이 세상과 작별했다는 소식을 들은 브선생님은 슈선생님 부부의 우수 제자였던 과거부터 쭉 회상하며 짝사랑을 되새김질하는 내용이 줄거리다. 그런데 왜 말년의 브선생님이 소싯적 브선생님마냥 단발머리 무수염으로 나왔는진 의문이다. 한국인들이 수염 덥수룩 캐릭터를 싫어해서 그런가? 보너스로 소싯적 브선생님 역은 리얼 피아니스트가 맡아서 라이브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지만 대사는 하나도 없었다.



작품의 구조는 고전 오페라와 달리 파격적이었다. 아리아, 레치타티보에 디베르티스망(발레에서 스토리와 관련 없는 관객 잠깨기용 장면)이 추가된 모습이었다. 아리아와 레치타티보는 순수 창작이지만 브선생님의 속마음을 표현하는 디베르티스망에서는 클알못도 한 번쯤은 들은 브선생님과 로베르트쌤의 곡이 나와 눈꺼풀 열림 현상을 유도했다. 보너스로 합창 씬도 웅장한 성량으로 눈꺼풀 열림 현상에 일조했다. 현대에 제작된 작품답게 뮤지컬스러운 요소도 버무려졌다. 브선생님이 관객석 복도로 등장하는가 하면 레치타티보는 한국말이라 살짝 웃겼다ㅋㅋ


커튼콜 때 로베르트쌤 인사할 때 박수소리가 제일 컸다. 제자들 많이 오셨군요 선생님.....(그나저나 누가 여자경쌤 좀 끌고 나와주시지ㅠ 눈에 안 띄어서 좀 속상했다)




-관객 잠깨기용 레퍼토리 목록-   

 

헌정- 슈선생님 부부의 행복했던 시절 회상 장면 


브선생님 자장가- 로베르트쌤이 저 세상으로 떠났을 때 클라라쌤이 부름 


아이슬란드 러시아 스위스 스웨덴 우크라이나 핀란드 헝가리 무곡 5번- 클라라쌤과 브선생님이 우정을 쌓던 시절(성진 오빠와 스승님의 포핸즈가 생각나서 속으로 피식함) 


인터메조- 홀로 남은 브선생님의 내면 표현(이 장면이 끝인지는 몰랐지....갑분커튼콜 나와서 띠용) 


공연 전 궁예했던 브선생님 레퍼토리들이 거의 다 나왔지만 내심 기대했던 브피협은 안 나왔다. 그 긴 곡을 어떻게 집어넣겠니ㅡㅡ 



경  드디어 여자경쌤 실물 영접  축

공연 끝나고 여자경쌤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었다. 최애 6인사도부터 영접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최애님과 만날 줄이야.... 실제로 뵈니 어버버 모드가 되어 집에 가서 자괴감이 든 건 안비밀이다. 이러다 성진오빠 앞에선 어쩌려고 그래?;;


사진 찍어주신 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마무리는 서울시에 피어오른 led 아지랑이(?) 사진이다.



덧) 쇼선생님 오페라도 출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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