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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칸테 Jun 08. 2021

나는 나는 돈키호테 노가르시아

유니버설 발레단 '돈 키호테'

이루지 못할 꿈을 꾸고 이루지 못할 사랑을 하고


4월 말 공연 스케줄을 짜기 시작할 때 클래식 음악 다음으로 좋아하는 장르인 발레도 눈에 들어왔었다. 하지만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는 블록버스터급 작품이라 3시간급 러닝타임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했다ㅠ 갔다 온 사람들 후기를 보면 공연장 나왔을 때 거의 10시 반이었다니 멋모르고 갔으면 구파발역 앞에서 깨깨오 택시 부를 뻔했다. 낮 공연도 있었지만 이미 두부밭이 되어 늑장 부린 덕후에게 입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ufo모양인 오페라하우스는 비타민역과 바로 연결되어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 떼로 가득 차 있군. 미술관 나들이와 분수대 광장 나들이객들이 쏟아져 나와서 그렇다. 주말에 공연을 보러 간다면 평일과는 차원이 다른 무정신 상태를 체험할 수 있으니 주의하자.


아아 오늘 목적지는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입니다. 발레 덕후들과 클음덕후들께선 비타민역 엘리베이터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

발레 돈 키호테의 감상 포인트는 3막 결혼식 장면에서 나올 키트리의 옷 색깔이다. 키트리의 퍼스널 컬러는 빨간색이지만 결혼식을 강조하기 위해 흰색 의상을 입는 버전도 있기 때문이다. 발레계의 주류인 유럽 발레단과 콩쿠르 참가자들은 대부분 빨간색 의상을 입어 '얘가 키트리임'을 강조하지만 이번 공연은 흰색 의상이 당첨되었다. 암요, 스토리도 중요하죠.


더불어 키트리도 빨간색 옷뿐만 아니라 연두색 연보라색으로 다양하게 입고 나온다. 유럽 놈들의 고상 떠는 예술이라 작품에 따라 그동안 의상 스타일이 암묵적으로 고정되어 있었지만 변화를 좋아하는 한국 발레인 들은 과감한 새 시도를 추진했다. 한 술 더 떠 취미 발레는 클래식 튜튜(흔히 상상하는 원형 치마 발레복)를 입는 작품에 로맨틱 튜튜(늘어지는 치마 모양 발레복)를 입고 나오기까지 한다.


 역시 한국은 십 년이 지나면 강산이 바뀌는 게 아니라 천지가 개벽하는 나라다.


오페라 하우스답게 카르멘과 마술피리의 파파게노 옷이 전시되어있다. 둘 다 클알못도 한 번쯤은 들어본 곡들이 나오니 공연 보고 싶다고 하는 지인이 있다면 데려가 봐도 좋다. 


참고로 카르멘도 발레 작품이 있다. 하지만 비교적 현대에 나와 관능미를 강조해서 그런지 국내 공연이 거의 없다ㅠ

음악당 건물 하나에 콘서트홀 쳄버홀 리싸홀 인춘홀이 있듯이 오페라하우스에도 오페라극장 토월극장 자유소극장이 한 건물에 있다. 그래도 오페라극장은 크니까 다 따로 있겠지 했는데 경기도 오산이었다;; 

   역시 사진 찍기는 주변에 있는 포즈만 잘 따라 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셀카만 찍다가 갑자기 웬 전신사진인가 싶지만 이번 공연은 모친과 같이 가서 가능했다. 같이 가는 김에 그동안 대중교통을 이용해 자가용으로 한 번에 쭉 가면 편하지 않을까 해서 시도했지만 아니 왜 주말에도 차가 막히는 거죠? 강 건너 남쪽 동네 교통지옥을 우습게 본 내 죄였다. 다행히 공연시간에 늦지는 않았지만 다시는 자가용으로 예당에 가면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자차로 예당에 왔다면 주차요금 정산은 인터미션 때 미리 해놓자. 공연 끝나고 나면 요금 정산기 앞에 바이킹급 줄이 늘어선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다음 정기공연은 지젤이다. 세헤라자데처럼 피겨스케이팅 대표 사골곡이고 연느님도 프로그램 음악으로 사용해 피겨 덕질 좀 했다면 익숙한 작품이지만.... 그 시즌에 경기 출전을 1번만 해 묻혀버린 비운의 프로그램이다ㅠ 만약 한창 경기 많이 나갈 시기에 썼으면 호두까기 인형과 백조의 호수 다음으로 지젤이 피켓팅 유발 발레 공연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https://youtu.be/RPTigaUOGbo

   연느님 버전은 지젤이 죽고 망령이 된 후반부 위주다. 시골 처녀 지젤은 다른 선수들 버전으로 보시길.


발레 공연은 눈호강과 귀호강을 같이 할 수 있어서 객석에 남녀노소가 고루 앉아있는 알흠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언젠간 저녁에 하는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들도 남녀노소 두루두루 보러 오는 날이 오겠지? 관객 구성을 보고 관크파티를 걱정했지만 다들 음악 시작하고 나선 대몰입하는 마법이 일어났다. 음악이 끊길 때 즉석 공연평이 나오긴 했지만 내 기준으론 참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산초 내가 누구지? 노가르시아!


너무 늦게 예매해서 3층 뒤에서 두 번째 줄 자리로 잡았는데 생각보다 볼 만한 자리다. 가요 콘서트처럼 면봉만 볼 줄 알았지만 1층 자리에선 못 보는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지휘자 손짓도 보이고 군무도 한눈에 확 들어온다. 그러니 손이 느리거나 텅장 때문에 1층에 못 갔다고 너무 좌절하지 말길 바란다. 오페라극장의 무대는 음악홀보다 깊고 넓어서 출연자들 눈코입과 의상의 디테일은 안 보여도 동작은 겁나 잘 보인다. 


이번 공연은 막이 오르기 전에 단장님의 해설이 있었다. 취미 발레인이나 발잘알이면 우왕 국을 외칠 수 있는 구성이지만 나에겐 중고딩때 책에서 봤던 내용을 또 듣는 기분이라 그저 그랬다;; 대신 단장님을 기억하는 원로 팬들이 많았는지 간단한 시범이 나오자 급 박수가 터진 게 웃음 포인트였다. 


웬만하면 웃을 때 같이 웃자. 살면서 웃을 일 별로 없잖아...


발레 돈 키호테의 주제는 '오작교가 된 돈키호테 기사'다. 여주 아버지의 반대로 비밀 연애하는 주인공 커플을 보고 지나가던 돈키호테가 아버지를 협박해 무사히 결혼시키는 전형적인 k-드라마형 줄거리다. 원작 소설을 읽고 돈키호테의 위대한 모험을 기대했다면 큰 실망을 안고 공연장을 나오게 되니 주의하자;; 


발레는 오페라와 달리 스토리를 아예 몰라도 화려한 춤씬이 많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배경이 세비야의 이발사나 카르멘이랑 비슷해서 스페인 스타일 춤과 탬버린 캐스터네츠 소리가 관객들의 심박수를 들었다 놨다 하기 때문이다. (탬버린은 에스메랄다만 쓰는 줄...) 사실 외국 발레단 공연에선 엑스트라들이 거의 가만히 있기만 하는 걸 보면 흥의 민족에 맞춰 추가한 동작인가 싶다.


돈키호테 같은 클래식 발레 공연 예습은 콩쿠르 영상이 제격이다. 전막 공연 영상도 있지만 그걸 틀었다간 예습 의지를 안드로메다로 날릴 수 있기 때문에 추천하고 싶지 않다. 너튜브 검색창에 'prix de lausanne+작품 이름'이나 'YAGP+작품 이름'을 치면 1~2분짜리 독무와 2인무 요약 버전들이 예비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https://youtu.be/NDR1s1LLUAA

1막 키트리 친구들 배리에이션


https://youtu.be/lOOLQSLIWAU

2막 큐피드 배리에이션


https://youtu.be/1mLUygA7KwU

3막 키트리 배리에이션

장면 중간중간에 지휘자의 손짓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 정마에 팬들이 오페라까지 쫓아다니면서 본다는 말을 듣고 지휘자가 잘 보이지도 않는데 왜? 싶었는데 이제 보니 이해된다. 그런 의미에서 River south 심포니도 발레 콘체르탄테를 공연해보는 것도....(물론 지휘자는 여마에님 이어야 한다. 바라는 것만 많은 욕심쟁이 팬ㅡㅡ) 예전에 유니버설 발레단 라 바야데르 반주도 했으니 멋지게 연주할 거라 믿는다. 이왕이면 그랑 파 클래식이나 레 실피드(쇼 피니아나)처럼 우리나라에 덜 알려진 작품을 해줬으면 좋겠다ㅎㅎ


https://youtu.be/VZlc3yaPA-c

       오페라 콘체르탄테가 있듯이 발레 콘체르탄테는 이런 느낌이다.

싸이의 민족답게 대여섯 번이나 되는 커튼콜 끝에 나오니 2시간 30분이 지나있었다. 만약에 저녁 공연을 예매했으면 10시에 오페라극장 문을 나와 기사님 이거 못 타면 망해요 모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4층 자리에 앉지 않는 이상 공연이 끝나고 나면 메인 엘베에 내 자리는 없으니 계단이나 구석 엘베를 이용하자.


비타민 역으로 내려가서 대한음악사에 구경만 하려고 들렀다가 지름신이 보우하셨다. 발레 영상들을 돌려보면서 발레 곡들을 너무 연주하고 싶었지만 imslp에는 피아노 독주 버전이 없고 수입 악보 잘못 사면 초보용 소곡집이 오기 때문에 아예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악보가 새로 나올 줄이야... 풀버전은 최소한 모피소를 중간에 멈추지 않고 완곡할 수 있는 실력은 있어야 비벼볼 수 있는 수준이니 초보는 슬림한 요약본으로 사길 바란다. 


수록곡은 대부분 콩쿠르에 잘 나오는 클래식 발레 솔로 배리에이션 곡이다. 그래서 발잘알이 아니면 낯선 그랑 파 클래식, 할리퀸아드같은 작품도 다룰 수 있다. 다만 춤추는 데 쓰는 음악답게 평균 빠르기가 알레그로이니 시작은 모데라토(뭐될라꼬) 이하인 곡부터 시작하자. 귀에 익은 속도를 무의식 중에 따라 하지 않도록 뇌내 제어장치 장착도 필수다.


덧 2) 예전 악보로 쳤던 키트리 배리에이션 연주 영상으로 마무리하겠다. 

https://youtu.be/8qhsQv8nE9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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