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단루제만& 문지영 듀오 리사이틀
이날은 오후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7월 일정 중 내가 좋아하는 베피협 5번이 들어간 연주회의 포도알을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 피켓팅 아닐 것 같은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니 싶지만 클판은 벌레 많이 잡는 새들 천국이다. 느긋하게 굴었다간 스피커만 보이는 자리 축 당첨이다.
티켓팅은 성공했고 이제 떠나볼 시간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지하철이 왜 이렇게 시끄럽지ㅠ 지하철에 타면 저절로 전화와 목소리톡 기능이 정지되는 전파 개발이 시급하다. 중요한 전화도 아니고 수다인데 왜 그리 길고 시끄럽게 하는지 모르겠다.
여유 있게 도착해 취미악기러의 방앗간 대한음악사에 간다. 그선생님 피아노 소나타와 에키에르 쇼선생님 소품 악보집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에키에르 악보가 구석에 있어서 안 파나 싶지만 음악춘추 한글판 악보 책꽂이 바로 옆에 있다. 우엥 에키에르는 없나 봐 하면서 울상 지을 필요 없다. 움직이는 책꽂이라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으면 옆으로 비켜주니 걱정은 금물이다.
예당 혼공러의 필수코스는 관객들 속 고독이다. 모두들 콘서트홀과 리싸홀 공연을 기대하며 3355 돌아다니지만 내가 보는 공연은 그게 아니다. 가끔은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사람 구경도 해야 숨통이 트이기 마련이다.
이번 공연은 콘서트홀과 챔버홀 모두 첼로가 메인 요리다. 예당 대관 담당자가 음악당의 조화를 생각해 일부러 일정을 맞물리게 짰을 리는 없고 우연의 일치겠지.
오늘 목적지는 여기다. 달지영님의 단독 리싸는 시작 시간이 8시인 데다가 너무 늦게 들어가 놓치고 통곡하는 와중에 듀오 리싸가 강림해 울음 뚝하고 표를 끊었다. 리싸만큼은 아니지만 이 공연도 늦게 들어가서 만원의 행복은 누릴 수 없었다. 평소라면 절대 끊지 않을 S석으로 강제 플렉스를 해야 했다;;
달지영님은 벨기에 다큐 K-classic generation을 보고 입덕한 최애 4호님이다. 부조니 콩쿠르 결선에서 쇼피협 2번을 연주하는 모습이 입덕의 순간이었다ㅋㅋ 따라 치기까지 했다가 시원하게 국밥 말아먹기까지 했으니 말 다했다. 역시 쇼피협은 전공자용 협주곡이었다ㅠ 취미러가 연주하고 싶으면 2악장만 손대길 추천한다.
https://youtu.be/34DCBEiBQpc?t=1017
지난달 용수철 실내악 축제에 비하면 드문드문 빈자리가 보인다. 다들 옆동네 공연 갔나 보다. 그래도 코시국 전에는 콘서트홀에서 외국 유명 연주자나 오케스트라가 내한공연을 열면 옆동네 챔버홀과 리싸홀은 파리 놀이터가 되었다는데 다행히 그 수준은 아니다.
예당 2층 1열은 어디 홀과는 달리 시방석이 아니다. 오히려 1층 뒷자리보다 관크 확률이 낮아 자리신이 보우할 수도 있다.(없다고는 안 했다 없다고는....) 다만 중딩 이하의 자녀를 데리고 온다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 앉은키가 작아 난간이 정확히 시야를 가리는 관크유발 조건에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드디어 첫 곡인 브레발 첼로 소나타 5번이다. 흠 역시 시작은 바로크 곡이구나 하며 감상의 세계로 들어가려는데 옆옆자리의 코골이 악기 무단 협연으로 흥이 다 깨졌다ㅠ 그래도 저번 놋쇠홀 공연보다는 참을만했다. 예당은 놋쇠홀처럼 오면서 기운 다 빼는 위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은 브선생님 첼로 소나타 2번이다. 중고딩때 지인 찬스로 간 연주회에서 유일하게 기억에 남아 mp3에도 넣고 다닐 정도로 좋아했던 곡이라 너무 반가웠다ㅎㅎ 그 시절에도 피아노 덕후라 반주 파트를 연주해보고 싶었는데 같이 연주할 첼로러는 없고.... 취미러에게 합주용 피아노 곡은 그저 꿈일 뿐이다.
인터미션은 귀중한 多不有時 타임이다. 방광의 내구력을 너무 믿지 말고 아래층에 내려가서라도 다녀오자. 망가지면 인생이 많이 피곤해지는 장기다.
2부는 시선생님의 말린코니아다. 예습은 우리 집 펭귄에게 준 탓에 악기 튜닝하는 소리인 줄 알고 멍 때렸는데 이미 곡이 시작하고 있었다;; 근현대 작곡가답게 피아노와 첼로가 비슷한 주제를 서로 주고받는 형식 따우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각자 갈 길대로 연주한다. 삼겹살에 로제 소스 끼얹어 먹는 느낌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는 게 놀람포인트다.
다행히 1부 코골이 무단 협연자는 들어오지 않아 안락한 환경에서 감상했다. 겁나 좋군?
이제 프첼소다. 피아노 타악기설 창시자답게 피알못이 아무 건반이나 두드리는 느낌의 피아노곡을 쓰더니 첼로곡도 아무 줄이나 일단 뜯어 분위기다. 불암스 선생님 곡에선 2악장에만 약하게 나오던 피치카토가 프첼소에선 강강강으로 도배 수준이다ㄷㄷ 프선생님은 전악기 타악기화가 특기신가 보다.
앙코르는 사랑의 인사(현악기 독주회 단골 앙코르), 사꿈, 이히 리베 디히를 궁예 했는데 이번에도 정확히 빗나갔다. 시선생님의 로망스는 좋았지만 이러다 앙코르계의 펠레가 되는 거 아닌가 싶다. 가능성이 높은 곡은 버리고 내가 듣고 싶은 곡으로 앙코르를 궁예 하니 맞힐 리가 있겠니ㅡㅡ
드디어 최애 6인사도 중에서 4호님을 영접했다. 그동안 쌓아온 담력(?)으로 사진을 망치진 않았지만 어버버 모드+막차 시간 걱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 못하고 왔다ㅠ 달지영님 인별 Q&A때 쇼피협 3악장 따라 쳤다가 말아먹었다고 말한 사람 저예요....
사진 찍어주신 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날은 싸인용 악보를 안 가져가서 평소 장거리 출타 때 들고 다니는 싸인 수첩에 싸인을 받았다. 루제만님부터 만나 먼저 받았는데 흠... 지금까지 이런 싸인은 없었다 이것은 낙서인가 싸인인가 소리가 나오는 결과물이군.
그래도 본 목적이었던 달지영님 싸인은 겁나 좋군?을 외칠 수 있었다.(오늘따라 겁나 좋군을 많이 하네;;)
덧) 6월은 리얼 여름이라 그런지 집에 오니 후덥지근한 기운이 나를 감싼다. 이제 6월 말엔 뭐 입고 공연장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