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환상의 ‘더하기’
촛불이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드는 와중에 2017년이 시작되었다. 어쩌면 후세의 역사는 작년과 올해를, 국가적 규모의 범죄의 시간으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하나씩 밝혀진 진실들보다, 여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는 진실이 더 크고 많다는 의혹이 촛불들을 광화문으로 모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영화 <마스터>가 찾아왔다.
일단…… 특기가 뭐에요?
우리는 영화 <마스터>에서 각각의 개성을 가진 세 명의 배우들을 만나게 된다. 따뜻한 미소와 맹수의 살기를 동시에 표현하는 배우 ‘이병헌(진현필 회장 역)’, 현란하고 능숙하게 최첨단 기계와 기술을 구사하지만, 능청스럽기도 하고 사려 깊은 모습도 보여주기도 하는 배우 ‘김우빈(박장군 역)’, 그리고 논리적 이성의 차가움과 투철한 정의감의 뜨거움이 공존하는 엘리트 형사를 연기하는 배우 ‘강동원(김재명 형사 역)’.
그런데 우리는 세 배우로부터 전에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캐릭터들을 발견하게 된다. 잔혹한 내면을 감춘 악당을 보여주는 이병헌을 우리는 앞서 <지.아이.조>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에서 만났던 것 같다. 게다가 김우빈과 강동원의 캐릭터는 자신의 필모그래피가 형성한 이미지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일단 우리는 이 캐스팅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배우들에게 각각 그들이 가장 자신 있는 역할을 맡겼다고 말이다. 캐스팅부터 한 다음 시나리오를 썼나 의심이 갈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고 <마스터>를 ‘너무’ 익숙한 캐릭터들을 조합한 영화로 보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그 덕분에 영화의 표현력이 매우 두터워진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마스터Master
1. (대상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주인.
2. 달인, 명수.
‘마스터’라는 단어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첫 번째는 무엇인가를 소유하거나, 그것에 대해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할 수 있는 ‘주인’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어떤 기술이나 분야의 달인이나 명수(독일어의 meister)를 의미한다.
일단 <마스터>는 표면적으로 두 번째 의미에서 사용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세 명의 ‘마스터’들을 만나게 된다.
먼저 대중들을 설득하는 진현필 회장(이병헌 분)의 표정에는 싱그러운 미소와 진심을 담은 눈빛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논리적이면서 동시에 따스한 희망도 함께 담긴 것처럼 믿어졌던 진회장의 약속은, 사실 치밀하게 짜인 거대한 사기였다. 가면을 쓰고 있을 때의 다정한 미소와 눈빛, 그리고 그것을 벗어던졌을 때 느껴지는 살기와 카리스마. 극단적으로 대조적인 두 가지 캐릭터가 동시에 표현되어야 하는 진현필 회장의 양면성에 이미 관객들은 스크린 너머에 의식을 빼앗긴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두 번째 마스터인 박장군(김우빈 분)은 진회장의 곁에 있다. 박장군은 뛰어난 해킹 실력과 프로그램 제작 실력 등 관객들이 (익숙한 것처럼 착각하는) 낯선 첨단기술의 달인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진회장의 사기극을 가능하게 만드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우리에게 선보이는 스킬들이 기술적으로, 그리고 여건 상 가능한 것인지는 질문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키보드를 현란하게 두드리는 압도적인 퍼포먼스와 김우빈만의 깜찍한 능청의 결합은 이미 충분히 관객들(특히 여성 관객들)을 만족시키고도 남기 때문이다.
세 번째 마스터는 냉철한 이성과 세련된 외모, 그리고 뛰어난 수사 능력을 지닌 수사의 마스터 김재명 형사(강동원 분)이다. 그는 권력자들의 압력과 자본의 유혹에 꿈쩍도 하지 않는 투철한 정의감, 집을 가득 채운 서재의 책들과 깔끔하게 정리된 개인 공간이 형성하는 이지적인 카리스마, 그리고 심장을 관통하는 미소라는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버리는 바람에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캐릭터이다.
(어쨌든 세 명 모두 ‘여심 공략’ 마스터, 아니면 ‘비주얼’ 마스터인 것 같아.)
리얼리즘 반, 판타지 반
진 회장과 김엄마(진경 분)가 배를 타고 한국을 떠나며 관객을 응시하는 장면은 이 영화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분할한다. 전반부 서사가 거대한 부를 획득하며 한국을 무사히 탈출하는 ‘진회장의 승리’라면, 후반부 서사는 재정비를 마친 후 기어코 관철되는 ‘김재명 형사의 승리’로 볼 수 있다.
배를 타고 바다 너머 어딘가로 진 회장이 떠나간다. 바다 이쪽에 남겨진 사람들, 피해자들을 응시하면서 말이다. 아무리 커다란 범죄라 하더라도, 결국 한국은 ‘유전무죄’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조소를 던지면서 말이다. 그리고 진 회장의 응시는, 동시에 스크린 이쪽에 앉아있는 관객들을 향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영화 <마스터>가 전하는 메시지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바로 그 피해자가 다름 아닌 관객들. 너희들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전반부의 서사를 경제사범들에게 철저하게 관대하고 너그러운 한국 사회에 대한 풍자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므로 여기까지의 영화는 철저하게 ‘리얼리즘’이다.
그런데 종결될 것만 같던 내러티브가 다시 시작된다. 몰락한 것처럼 보였던 김재명 형사와 그의 팀들이, 다시 ‘정의구현’과 ‘권선징악’에 도전한다. 진회장에게는 낯선 외국인 갱스터들과 초호화주택, 여전히 한국의 정치인과 법조인들에게 가볍게 전화통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인맥, 그리고 한국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자본이 있다. 최종보스 진회장에게 도전하는 우리의 영웅 박장군과 김재명 형사의 모험이라는 장대한 서사는, 한국과 필리핀을 넘나들면서 (마치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보여주는) 총격전과 자동차 추격 신scene과 같은 압도적인 스케일의 스펙타클과 액션을 통해 드디어 완성된다.
영화의 대단원에 이르러 재력과 권력, 그리고 폭력이라는 난관을 뚫고, 정의의 편으로 돌아선 박장군(김우빈 분)과 김재명 형사(강동원 분)는 결국 그들이 원하는 정의의 용사가 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관객들은 이러한 결말에 대해 전반부에서 느꼈던 씁쓸한 감정으로 인해 느끼는 허기를 채우고 포만감을 느끼며 극장을 나서게 된다.
어쩌면 영화 <마스터>는 우리에게, 대한민국의 ‘정의’란 이러한 ‘판타지’를 통해서나 비로소 충족될 수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토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반 형사가 자기 팀을 이끌고, 소모되는 막대한 경비에 대한 걱정 없이 마음껏 모험하고 수사하는 판타지가 아니면, 한국의 권력과 자본을 독점하고 있는 집단이 저지르는 부정(不正)을 결코 심판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마스터’의 첫 번째 의미, ‘(대상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주인’이라는 항목이 다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 전반을 지배하는 그들은 어쩌면 스스로를 ‘주인’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대상’이란 아마 대중이나 시민, 또는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호명하는 관객들, 다시 말해 바로 여러분 개개인일 것이다.
사진출처 : 영화 <마스터> 1차 예고편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