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메디의 본질을 새삼 깨닫다.
캐스팅 : 노진원, 박철민, 이호연 배우님
몇 번인가 볼 기회가 있었지만, 묘하게 자꾸 엇나가는 바람에 계속 만나지 못했던 <늘근도둑이야기>를 드디어 보게 되었다. 얼마 전 <블랙버드>에서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도 실망스러웠던 까닭에, 다소 불안을 안고 극장에 들어섰다. 배우 박철민 또한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서 S#(scene number)가 이끄는 대로 분할된 호흡에 익숙해져버렸을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모든 조명이 꺼지고, 캄캄한 공간에 갑자기 두 도둑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시원한 발성과 정확한 발음, 그리고 적당한 피로와 다양한 감정의 조각들로 우려낸 두 배우의 목소리가 나를 안심시킨다.
‘괜찮아. 기대해도 괜찮아. 괜찮아’
그리고 머지않아 극장 안은 벌써부터 웃고 싶어지는 에너지가 지배하기 시작했다. 웃고 또 웃는다. 속까지 시원한 풍자가 생각을 조금만 무겁게 만들라 치면, 곧이어 모든 것을 한없이 가볍게 하늘로 띄운다.
근래 몇 년 동안 텔레비전에서 코메디 프로그램을 보지 않게 되었다. 풍자성을 거세당해버린 그 프로그램들이 점차 인신공격과 슬랩스틱에만 몰두하는 바람에, 더는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재미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마지막으로 눈물이 나도록 웃어본 것이 언제였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게 된 것이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의 2장에서 “희극은 실제 이하의 악인을 모방”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악인’이란 사악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이하의 인물, 즉 능력이나 성품 등이 모자란 상태-부덕kakia한 인물을 의미한다.) 그리고 4장에서는 풍자시를 쓰던 시인들이 희극을 만들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를 통해 코메디란 본질적으로 풍자성이 내재하는 장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늘근도둑이야기>는 여기에 잘 부합한다.
이제 다시 웃으면서 살아야겠다. 웃을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만약 웃을 용기가 다시 필요해지면 어쩌면 나는 다시 두 도둑들을 만나러 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