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이탈리아 ::: 베네치아
#1. 엄마와 함께 유럽으로! - 미니양
세 번째 유럽, 이번에는 엄마와 함께하는 유럽이다.
누군가의 남편, 그리고 누군가의 딸이겠지만, 나에게는 엄마인 그녀는 내가 세상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변하지 않는 미소로 나를 맞아주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뒤늦게 여행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은 순전히 나 때문이다. 나와 함께 처음 다녀온 홍콩 여행 이후 생각날 때마다 그 때의 추억과 남기고 돌아온 아쉬움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는 달리 그녀가 시간의 흐름에 조금씩 마모되어가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문득 더 늦기 전에, 아직은 낯선 풍경을 걷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에 그녀의 첫 여행 이후로 종종 함께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이번에는 유럽으로 향하는 루프트한자 비행 편에 나란히 앉게 된 것이다.
우리의 행선지는 우선 뮌헨을 경유하는 겨울의 베네치아. 베니스라고도 부르는 이 도시는 워낙 유명한 여행지인데다, 머나먼 동양인들에게는 일종의 이상향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장소이다. ‘운하로 연결된 도시’, 그리고 ‘바다 위에 떠있는 도시’라니 이 얼마나 낯설고 환상적인 울림인가. 물론 끈적이고 바닷물내음이 가득한 공기 등은 그 울림에 전혀 포함되지 않지만.
엄마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로 베네치아를 꼽는 것을 보니 말이다. 우리의 비행의 출발은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중국 상공의 비행기 대수 제한으로 인해 출발은 30분가량 지연되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무난한 출발이려나. 그녀의 표정은 이미 새롭게 그녀의 인생에 새겨질 시간에 대한 기대로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기내식과 맥주를 즐기고, 잠시 잠에 빠져들기를 반복하는 11시간을 지나 보내고 나서야 뮌헨에 도착할 수 있었다. 뮌헨 공항에서 4시간을 대기해야만 했지만, 다행인 것은 뮌헨 공항은 커피가 공짜라는 점. 우리는 함께 아메리카노를 붙잡고 긴 비행의 피로를 풀며 또 다시 우리를 태우고 하늘로 떠오를 다음 비행을 준비했다. 우리를 태우러 온 비행기는 프로펠러가 달린 작은 여객기였다. 이미 어두워진 하늘 한 가운데에서 엔진 소리에 몸을 싣고 그렇게 우리는 베네치아에 들어섰다.
#2. 오랜만! 베네치아 - 미니양
공항에 내린 우리는 곧바로 버스를 타고 메스뜨레로 향했다. 엄마에게 베네치아의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지금 빛을 내려줄 태양은 지구 반대편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을 시간이다. 우리는 우선 베네치아를 뒤로 하고 바다로부터 물러나와 버스를 탔다. 버스는 우리를 메스뜨레역 앞에 내려주었다.
베네치아는 워낙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숙소는 메스뜨레에 잡았다. 밤에 메스뜨레 역에 내려 숙소를 찾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불안했다. 이미 이곳은 밤 열한 시가 지난 시각이라 길거리에는 인적이 끊겨버린 것이다. 한국의 대도시라면 여전히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쳐 날 테지만, 사실 대부분의 나라와 대부분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처럼 무엇인가에 쫓기며 살지 않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을 끌어안는 것에 다시 불안해하면서도 자신이 왜 불안해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평범함’이 되어버린 한국은 그런 면에서는 살기 힘든 나라인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엄마와 나는 어찌어찌 무사히 숙소를 찾아서 첫째 날 밤을 편안히 보냈다. 보통 혼자 여행을 가면 호스텔과 도미토리를 전전하지만, 이번에는 함께 간 엄마를 위해 호텔 숙소를 예약했다. 가격은 호스텔이나 도미토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가격 대비 시설은 좋은 편이라 마음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 창문 밖으로 메스뜨레의 전경이 펼쳐진다.
약간 흐린 하늘에 우리는 옷차림을 따뜻하게 한 다음 숙소를 나서 메스뜨레역에서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로 향했다. 여섯 해만에 찾은 베네치아는 익숙하면서도 반가웠다. 리알토 다리에서 바라보는 전경도 여전했고, 산 마르코 광장도 역시 여전했다. 엄마는 산 마르코 광장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티비에서 본 것보다 훨씬 크다며 연신 감탄을 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함께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도 한 장도 없이 그저 골목골목을 그냥 돌아다녔다. 베네치아에서는 그러는 편이 가장 좋았던 기억이 내게 있기 때문이다. 원래 여행은 꼭 뭘 보지 않아도, 꼭 뭘 하지 않아도 좋은 법이다. 그렇게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만난 작은 성당(결코 작지는 않지만) 앞의 광장에는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있고, 아이들은 서로 어울려 뛰어놀고 있었다.
문득 내가 어린 시절 함께 신나게 놀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 때 그 친구들은 지금 이 순간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마르게리따 피자 한 조각을 입에 물기도 하고, 젤라또 한 스쿱을 사서 떠먹기도 하며 우리는 해질녘까지 베네치아를 그렇게 돌아다녔다. 조금씩 베네치아에 어둠이 찾아오는 것을 보니 다시 쉴 곳으로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온 듯하다.
메스뜨레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는 버스를 탔다. 베네치아의 풍경은 6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한 베네치아의 풍경은 100년 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때에도 사람들은 리알토 다리를 건넜을테고, 산 마르코 광장을 지나쳤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메스뜨레로 돌아왔다. 엄마와 함께 내리고 보니, 뭔가 이상하다. 버스 요금을 안 낸 것 같은데? 어라? 어쩌다 보니 본의 아니게 무임승차를 해버리고 말았다.
#3. 일상을 여행하기- 고래군
그녀가 여행을 떠났다.
장난스레 ‘또 날 두고 가는구나!’라며 칭얼대었지만, 그리고 사실 조금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분명 그녀는 여행에 관해서는 베테랑 칭호를 가져도 될 만큼 경험이 많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래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 그런지, 혼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그런 느낌은 조금은 옅어졌다.
그래도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다.공항으로 가고 있다는 연락, 그리고 이제 비행기에 탑승해야 한다는 연락 이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무선인터넷망에 접속해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기다리는 일뿐이다. 그러고 보면 한동안은 나 역시 여행을 떠난 셈이다.
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나의 여기서든 그녀의 다른 곳에서든 마찬가지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