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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Jul 19. 2015

루블라냐로 가는 시골버스

2013. 이탈리아 ::: 뜨리에스떼

#1. 뜨리에스떼는 어디?- 미니양


 엄마와 나의 길은 우선 베네치아에서 북동쪽을 향해 슬로베니아로 향한다. 메스뜨레역에서 루블라냐로 곧바로 가는 버스편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루블라냐로 향하는 대신 평소 궁금했던 뜨리에스떼(Trieste)를 엄마와 함께 잠시 엿보기로 했다.


 메스뜨레역에서 뜨리에스떼로 가는 선로는 종종 바다를 만난다. 둘 다 바닷가 도시라서 그런 거겠지. 덕분에 기차 진행방향의 오른쪽 창문으로 탁 트인 바다가 보였다. 만약 왼쪽에 앉았다면 내 오른쪽에 앉은 사람이 자꾸 자기를 쳐다본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메스뜨레에서 출발하고 나서 한 시간 반 정도 지나고 나서 뜨리에스떼에 도착했다. 기차역에서 나와 바로 오른편을 바라보니 버스 터미널이 보인다. 우리는 이곳에서 루블라냐로 가는 오후 두 시 버스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이제 버스가 우리를 마중 나올 때까지 뜨리에스떼와 짧은 데이트를 즐길 차례이다.


 이 도시는 뭐랄까 로마나 밀라노와도 다르고, 플로렌스 쪽이나 베네치아와도 다르다. 이탈리아, 남유럽의 활기와 더불어 동유럽의 침착함과 정갈함이 반반씩 섞여있는 느낌이다. 여행정보나 가이드북 같은 건 하나도 없다. 뭐 어때, 그냥 서로 모른 채로 만나는 설레임도 있는 법이니까.


 아무 사전 정보 없이 둘러보는 풍경은 그대로 나의 눈동자에 박힌다. 시장도 보이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곳의 사람들이 그곳을 살아나가는 모습이 아무 필터를 거치지 않고 날것 그대로 나와 마주한다. 길을 걷다 눈을 마주치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나는 나를 바라보는 그들을 바라본다. 길을 걷다 마주친 누군지 모를 할아버지 동상이 내게 시간이 좀 더 있다면 며칠 머물며 조금 함께 알아가도 괜찮다며 나를 지긋이 바라본다. 하지만 미안해요, 나는 곧 또 어딘가로 떠나야 한답니다.



::: 어디든 사람사는 곳에선 시장이 선다 :::






#2. 루블라냐로 가는 버스는 시골버스- 미니양


 루블라냐행 버스는 마치 우리네 시골버스 같은 느낌이었다. 하긴 두 시간 반쯤 걸린다고 하니까 루블라냐에서 뜨리에스떼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시집 온 딸을 만나러 올 수도 있을 거다. 유럽 사람들은 한국인처럼 이른 아침부터 일하라고 사람을 내몰지 않으니까. 그리고 국적이 다르다고, 인종과 언어가 다르다고 해서 기겁하며 배척하지는 않으니까.


 버스를 자주 타는 모양인지 할머니들이 버스 운전기사 할아버지와 담소를 나눈다. 누구든 친해지고, 정겨워지는 버스. 그것이 내가 만난 루블라냐로 가는 길이다. 미소를 머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어떤 슬로베니아 아저씨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이 버스 단골손님처럼 보였던 그는 낯선 동양인인 우리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이요.”

“남한? 북한?”

“하하하. 물론 남한이죠.”

“한국은 자동차가 아주 좋아.”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 류의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한국사람이라고 하면 남한인지, 북한인지 물어보는... 내게 질문했던 그는 북한에 대해 본인 생각들을 쏟아냈다. 굶고 있는 북한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식의 내용. 여행을 다니면서 느끼는 건데, 외국에서는 북한이 남한보다 더 유명한 것 같다. 하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을 윽박지르고 삥 뜯는(?) 나라니까 유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참을 얘기하던 그는 우리에게 초콜릿을 건네주며 먹어보라 한다. 


 ‘맛있어요 아저씨, 고마워요.’ 하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진짜 인심 좋은 이 아저씨가 가지고 있던 초콜릿을 통째로 전부 줘버린다. 그리고는 버스에 있는 할머니들에게 우리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남한에서 왔고, 엄마랑 둘이 여행하고 있다고... 그랬더니 그 할머니들 모두 우리에게 웃으면서 눈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한참을 우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초콜릿 아저씨는 우리의 길 중간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내렸다. 

슬로베니아는 좋은 나라라고, 여행 즐겁게 하길 바란다며...

그리고는 웃으면서 내게 배운 한국말로 “안녕히 가세요.”라면서 인사를 건네주는 것이다. 


 ‘아저씨, 내가 만나는 첫 슬로베니아의 이미지가 아저씨 덕분에 선한 사람의 나라로 정해져 버리는 것 같아요. 고마워요. 쉽게 만날 수 없는,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는 기분 좋은 버스 여행이었어요.’







#3. 익숙한 일상에 스며든 낯선 삶의 조각- 고래군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오후 세 시에 맞춰 지하철역을 찾았다. 보이스톡은 3G로는 조금 쓰다 보면 끊어져버리기 때문에, 지하철역 와이파이를 이용하기 위해서이다. 항상 어딘가로 이동하기 위한 선의 시작이나 끝이기만 했던 역이 이번에는 목적지가 되어버렸다.


 “오빠~ 오빠다!”

 “응! 나예요. 뭐 해?”

 “조금 아까 일어나서 씻었어. 이제 아침밥 먹고 이동하려고. 거긴 몇 시야?”


 이 아가씨는 여행을 많이 다녀서 그런가. 시차 적응 같은 건 딱히 필요도 없나 보다. 피곤할 줄 알았던 그녀의 목소리는 생기로 가득하기만 하다.


 “오후 세 시 조금 넘었어. 당신은?”

 “여긴 아침 일곱 시.”

 “그런데 벌써 나가? 체크아웃 시간은 좀 더 남았잖아.”

 “아 원래는 천천히 루블라냐로 가려고 했는데, 중간에 다른 데 잠깐 들렀다 가려고.”


 그녀의 안부를 묻고, 오늘과 내일의 일정을 묻는다. 이번 연락을 마치고 나면, 다음 연락은 그녀가 루블라냐의 숙소에 도착해서 무선인터넷을 다시 이용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 될 것이다.


 “오빠 혹시 루블라냐 숙소에 와이파이 없으면 근처 카페 같은 데 찾아야 하니까, 한국 시간으로 밤 열 시에서  열두 시 사이에 연락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 때 당신은 몇 시인데?” 

 “오후 두 시에서 네 시 사이? 아 나 이제 밥 먹으러 갈게.”

 “네 알겠습니다. 조심하고, 즐거운  여행해요.”


 연락이 끊어지고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공간의 익숙한 오후, 하지만 그녀의 익숙하지 않은 시간과 공간이 남긴 향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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