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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시간, 뜨리니다드

2013. 쿠바 ::: 뜨리니다드

by 미니고래

#1. 새로운 만남에 대하여 - 미니양


바라데로에서의 호화로운 생활을 끝내고, 원래 여행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내 몸뚱이 크기와 비슷한 배낭을 앞뒤로 메고 또다시 이동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함께 있었던 이들과도 '안녕'을 고하고 각자의 길로 들어섰다.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여행길에서 스쳐지나가는 인연이 되기도 하고, 또한 여행이 끝난 뒤에도 긴 인연으로 남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서라도 만남이란 경험은 여행에서 꽤나 자주 겪는 기쁨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 일상을 살 때에는 새로운 만남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 점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 같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많은 사람들과 마주하게 되는 것들이 즐거웠다. 거의 매일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이어가며 시끌벅적하게 지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삶에 대한 무게가 무거워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누군가를 새로이 만난다는 것에 대해 점점 귀찮음을 느꼈던 것 같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래서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잘 아는 사람들과의 관계만 유지해오고 있다.


여행을 하면서 길 위에서 만나는 새로운 만남과 인연들을 경험하면서, 일상에서도 사람에 대한 편견이나 단절된 생각없이 새로운 만남들을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내가 먼저 다가가는 사람이 되어 봐야지 했었다. 그렇지만 인천공항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런 여행에서의 생각들은 다 망각해버리는 것 같다. 나를 맞아주는 익숙한 한국의 공기에 그저 원래 일상의 내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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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가 본 뜨리니다드 - 미니양


바라데로에서 다음 행선지를 어디로 할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곳은 뜨리니다드라는 도시였다. 쿠바 돈을 부족하게 환전했고, 가진건 환율이 가장 나쁜 미국 달러 밖에 없었기에, 그냥 다시 아바나로 이동해 나머지 일정을 놀며 쉬며 보낼까도 생각했다. 그러다 역시 조금이라도 쿠바의 다른 모습을 보고 싶어 뜨리니다드행 버스를 탔다. 산타 클라라에서 일행과의 2차 작별 후, 뜨리니다드에 도착했다. 뜨리니다드는 파스텔풍 집들이 아름다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짧게나마 있어본 뜨리니다드의 모습은 소박한 즐거움이 있는, 정 많은 마을의 모습이었다. 파스텔풍 건물들보다 사람들이 더 아름다운 곳이랄까? 물론 내가 그들의 속사정까지 알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의 표정에선 웃음기가 흐르고,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또한 마을 어디에서나 음악이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그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서로 즐겁게 대화하고 있었다. 낯선 이방인인 나에게도 웃으며 인사를 건넬 여유가 있는 그들의 모습이 좋았다. 어떤 일이 있든지 인생은 즐겁고 여유있게 살고 싶은 나에게 쿠바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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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집착의 무게 - 미니양


47일 간의 남미여행의 막바지에 이르면서 내 배낭은 점점 뚱뚱해졌다. 오랜 여행이라 나름 최소한의 짐만 싸서 출발했지만, 여행에서 구입한 내 수집품(?)이며, 지인들에게 줄 선물들을 채워 넣었더니, 배낭의 무게는 출발하기 전보다 무거워져 있었다. 그래도 배낭에서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건 나누고, 다 써버린 소모품들은 버렸기 때문에 내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무게는 아니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언젠가 여행에서 만난 한 언니가 해준 말이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걸으면서 자신이 메고 있는 배낭의 무게는 결국 집착의 무게였다고. 배낭에 있는 물건들이 어느 하나 뺄 수 없이 소중하다고 느끼지만, 막상 극한 상황에 처하면 모든 걸 다 버리게 된다고... 나 역시 여행을 다니며 그 말에 깊은 공감을 했고, 최대한 집착의 무게를 줄여가고자 노력하려고 한다. 여행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물론 인간의 욕심때문에 그러기가 쉽지가 않다. 그렇다면 그저 스스로 집착의 무게를 감내하며 길을 걸어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다만, 걷는 그 길이 조금이나마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4. 집착의 무게 - 고래군


그녀의 안부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며칠 전이었지? 한편으로는 부질없는 걱정에 포획되어버린 자신을 비웃는다. 애도 아니고, 더구나 여행 베테랑인데 뭘 걱정하는 거냐면서. 오히려 그녀의 길은 한국에서보다 확률적으로 더욱 안전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잖아. 하지만 그런 비웃음과 위로(?)에도 전혀 안심이 되지 않는다. 나의 시간은 그녀와의 단절로 가득 차버린 탓에, 더 이상 그 무엇에도 자리를 내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버렸다. 게다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라니.


어쩌면 그녀에게 집착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나와 주고받는 그 연락들은 그녀를 일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장애물이기도 하잖아. 잠깐이라도 자유롭게 놓아두는 건 어때? 게다가 정말 무슨 일이 있다면 연락이 왔겠지. 별 일 없으니 아무 소식 없는 것 아니겠어? 진정하자. 괜히 안 좋은 상상과 걱정은 그만 두고. 그 대신 기분 좋게 자유로운 그녀를 상상해 보는 건 어때?


그녀의 안부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며칠 전이었지? 아 제발 연락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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