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일에 대한 책임
아무래도 나는 한국의 코로나 사태가 심각할 때 귀국을 미뤘던 대가를 제대로 치루게 된 것 같다. 귀국을 미루기로 결정을 한 날짜가 2월 29일. 하지만 그 직후 3월 2일 포르투갈에 코로나 첫 확진자가 나왔다. 포르투갈의 첫 확진자는 리스본이 아닌 포르투갈 북쪽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 무렵만 해도 한국에 들어갈 때까지는 괜찮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알아듣지도 못하는 포르투갈 뉴스를 번역해가며 상황을 지켜보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3월 첫 주는 그럭저럭 지낼 만했고, 둘째 주부터는 사람 많은 곳은 피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한 건 옆 나라 스페인에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부터였다. 포르투갈은 3월 14일 일찌감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고, 그 날은 내가 입국까지 7일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그 때부터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행여 한국에 들어갈 수 없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 비행날짜를 당겨볼까 이리저리 노력을 해봤지만, 당겨지지도 않았다. 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비행기 티켓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혹시나 갑자기 비행이 취소가 되어 돌아갈 수 없게 될까 엄청 마음을 졸이며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 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리스본에서 거의 자가격리에 가까운 감금생활을 했다. 유럽 곳곳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난리가 난 상황이고, 포르투갈도 하루가 다르게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포르투갈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후부터 매일 조금씩 분위기가 변하고 있었다. 포르투갈 뉴스를 전부 알아듣진 못했지만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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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에서 나의 하루일과는 이러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식사를 챙겨먹고 뉴스로 상황을 체크한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를 한 편 본 후, 사람들이 거의 모이지 않는 집 앞 공원으로 잠시 산책을 다녀온다. 공원 벤치에 앉아 광합성을 하고는, 동네 슈퍼의 상황을 멀찌감치 밖에서 힐끔 가늠해 본다. 슈퍼에 사람이 많지 않으면 잠시 들어가서 꼭 필요한 생필품을 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슈퍼에 가는 것도 사치스러운 일이 되었다. 슈퍼 입구 바깥 야외에 각자 1m 이상 떨어져서 줄을 서서 기다리려야만 했고, 그러는 동안 일정 인원만 슈퍼 안으로 들여보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아침부터 사람들은 슈퍼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고, 들어가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 되었다. 슈퍼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은 행운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출국하기 위해 갔던 리스본 공항도, 경유했던 암스테르담 공항도 모두 비행편 정보 전광판의 3분의 2가 비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사태가 아주 심각함을 피부로 느꼈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을 때는 정말 만감이 교차했다. 한편으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공항 혹은 비행기에서 코로나에 전염되진 않을까 걱정스러웠고, 게다가 한국에서는 유럽발 입국을 금지하자는 의견들도 많아서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고, 코로나 검사도 음성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2주 자가격리' 중이다. 행여 코로나 증상이 나타날까 살짝 불안함을 안고 있기는 하지만, 이 또한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니까 나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도 자가격리를 확실하게 마무리하려고 한다. 비록 자가격리중이라 하더라도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으니, 그 사실 하나만으로 만족스러운 하루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