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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Aug 24. 2015

전쟁같은 일상을 떠나

2013.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모스타르


#1. 코토르에서 모스타르로 - 미니양


 코토르에서 모스타르행 버스를 탔다. 오후 2시 45분 버스가 있다. 코토르에서 모스타르로 가는 버스는 이 버스 한 대 뿐. 버스요금은 코토르-두브로니크 구간 16유로. 그리고 두브로니크-모스타르 구간은 버스 안에서 따로 끊어야 한단다.


 버스에 탈때 모스타르까지 간다니까 두브로니크 근처에 가니 티켓 끊는 아저씨가 끊어주러 다니더라. 두브로니크-모스타르 구간 115쿠나. 유로로도 끊을 수 있었는데 쿠나가 좀 더 쌌던 듯. 두브로니크 버스터미널에서 오후 5시 15분에 다시 출발한 버스는 저녁 8시가 넘어서야 모스타르 도착.


역에서 3분 거리에 있었던 숙소를 무사히 찾아갔다. 숙소 이름은 Pansion Aldi 게스트 하우스.

2인실 1인 1박에 10.90유로. 공동부엌, 공동욕실. 노부부가 본인 집 지하를 개조해 만든 것 같았다.

방은 좀 있었는데 겨울이다보니, 손님은 엄마와 나 우리 둘 뿐. 2일동안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주 편안하게 지냈다. 주인 할아버지도 친절하고 귀여우시고. 다만 너무 추워서... 다른 방에 있는 담요들까지 다 갖다 덮고, 옷을 다 껴입고 자야만 했다. 괜찮은 숙소였지만, 겨울에 모스타르에 다시 간다면 다른 숙소를 찾을지도 모르겠다.;;








#2. 어떤 이유에서라도 전쟁은 합리화될 수 없어! - 미니양


모스타르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속한 도시이다. 보스니아라고 하면 우리에게는 보스니아 내전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었다. 나 역시 별다른 정보도 없이 모스타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그저 두브로브니크에서 가깝고, 이슬람 문화를 느껴볼 수 있다고 해서 찾아간 도시였다.


 다음날 아침, 모스타르를 둘러보러 밖으로 나가서 가장 처음 만난 풍경은 건물 곳곳에 가득한 총탄자국이었다. 93년 내전으로 인한 슬픈 풍경이었다. 더불어 시내 입구에 묘지가 있었는데, 그 곳에는 내전 때 목숨을 잃은 분들이 아주아주 많았다. 마음이 아프고 씁쓸해지는 순간... 어떤 이유에서라도 전쟁은 합리화될 수 없다.


 총탄의 흔적들을 뒤로한 채 모스타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스타리모스트를 보러 가는 길. 비가 왔지만 이 곳의 풍경을 보고 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에서 가장 이슬람 문화를 짙게 느낄 수 있다고 하는 도시답게 곳곳에 모스크들이 많았다. 기도시간이 되면 방송으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숙소에서 15분여를 걸으니 스타리모스크가 보였다.


 또다시 내 입에선 감탄이...

좀 더 가까이..

좀 더 가까이..

계속 봐도 봐도 멋진 풍경이었다.


 다리 자체도 멋지지만 다리를 둘러싸고 있는 올드타운과 물, 나무들이 어우러져 너무나도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다리 건너면 와닿는 글귀가 쓰인 돌을 만날 수 있다. 잊지말자, 1993년. (우리도 잊지 말자, 4월 16일) 스타리 모스트는 93년 내전당시 크로아티아 포병대에 의해 무너졌다고 한다.


 16세기에 지어진 다리가 전쟁으로 인해 무너졌다가 2004년에 다시 지어졌다고.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소중한 문화재가 한순간에 훼손된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 우리나라 남대문에 불이 났던 사건도 생각나면서. 전쟁에선 모든 범죄가 용서된다는 고래군의 말에 씁쓸해지기도 했다.








#3. 모스타르를 가보지 않았다면... 정말 후회했을거야! - 미니양 


이슬람 문화의 향기가 짙은 곳 답게 너무나도 아름다운 문양의 기념품들이 많았다. 이슬람 문양에 반해 결국 하나 업어서 돌아왔다. 가장 작은 녀석이 8유로. 직접 손으로 만드는 걸 보니 업어오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슬람 문양을 새기는 법 배워보고 싶었지만 난 스쳐가는 배낭여행자니까...


 비도 오고 배도 출출해서 올드타운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전통음식 체바비와 맥주 선택. 맥주는 사라예보. 2.5마르크.맥주향이 있고 깔끔해서 좋았다. 체바비 6마르크. 5유로 남짓으로 멋진 한 끼 식사를 했다. (싼 물가 덕에 슈퍼마켓에서도 미친듯이 비상식량을 구입했다.)


 식사 후 다시 올드타운 탐험. 어떻게 이렇게 멋진 곳이 있을까 싶었다. 하루종일 비가 오더니 밤에 되자 그쳤다. 난 다시 스타리 모스트를 보러 밖으로 나갔다. 자꾸만 아른거리는 올드타운의 풍경 때문에. 밤의 스타리 모스트를 본 나는 다음 날 아침 스플리트로 떠나오기 전, 다시 올드타운을 찾았다. 아름다운 풍경을 다시 한 번 마음 속에, 눈에 새기기 위해서.


 이번 여행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고, 급하게 가보자 결심했던 모스타르. 모스타르를 가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싶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다시는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스타르, 다시 한 번 꼭 그 풍경을 찾아가고 싶다.








#4. 일상이 전쟁? - 고래군


 흔히들 우리 삶을 전쟁에 비유하곤 한다. 아마도 '삶은 투쟁의 연속'이라는 어느 양반의 말을 따다 쓰는 모양인데, 뭐 삶의 치열하고 숨가쁜 시간을 그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겠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숨가쁘게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삶을 원했던 적이 없다.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고즈넉한 일상을 보내다, 번화한 거리에서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고, 다시 조용한 혼자만의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는 걸 대부분 선호한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누군가가 '너는 전쟁같은 삶을 살아라!'라고 부추기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가진 자들이 더욱 여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착취당하는 자들이 더욱 개미처럼 일해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유포하는 이데올로기에 대다수의 삶들이 고민없이 휩쓸려가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사실 우리 삶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갈등을 원치 않는다면, 아무 관계도 맺지 않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도 싫다면 그저 '무조건' 양보하고 내어주는 삶을 살아야만 할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남은 방법은 어쩌면 죽음밖에 없으리라. 따라서 갈등이 삶의 한 부분이라는 점이 맞다면, 중요한 것은 갈등을 만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풀어나가는 방식일 것이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많이 미숙한 것 같다. 북적이는 지하철역에서 딱딱한 가방으로 나를 때리고는 모른척 걸어가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늘씬한 아가씨!  거기 술취한 아저씨도 집에 좀 들어가서 곱게 자요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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