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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Aug 27. 2015

여유부리기 좋은 도시, 스플리트

2013. 크로아티아 ::: 스플리트


#1. 느릿느릿 걷기 - 미니양


 크로아티아라는 나라의 중간이 잘렸다 이어지는 특이한 구조로 인해 난 두브로브니크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거쳐 다시 크로아티아 땅을 밟았다. 모스타르의 좋은 기억때문에 스플리트를 빼고 사라예보로 방향을 틀까 고민도 했지만, 바다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스플리트로 가기로 했다.


 모스타르-스플리트 버스로 4시간 (1인 32마르크 / 16유로), 짐값 1유로 or 8쿠나 별도.

크로아티아 국경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스플리트로 향했다. 4시간을 달리는 동안 해변가를 달리는데, 역시 아드리아해의 풍경은 끝내줬다. 버스기사 뒷쪽으로 앉으면 바다를 끼고 달릴 수 있어서 좋을 듯.


 스플리트의 숙소는 Apinelo 호스텔. (2인실 / 공동욕실 / 1인 약 75쿠나) 

기차역 바로 뒷골목에 위치했지만 처음 찾아가는 길이라서 헤매고, 헤매고. 결국 현지인의 안내로 무사히 찾아갈 수 있었다. 제일 깨끗한 호스텔로 상을 받았다더니 스텝이 연신 청소를...


 숙소에 짐을 풀고나니 어느덧 해질녘. 마침 날씨가 좋아 석양이 비친 바다를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선 꿈도 못 꿀 1월의 야자수도 보고. 숙소 근처 해변가를 조용히 산책하는 일은 꽤나 괜찮았다.

바쁜 여행보다는 느린 여행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역시 느릿느릿 걷기가 딱 맞는 것 같다.

이러니 바쁜 일상 틈에선 적응이 안되고, 정신도 안 차려지는가보다;;;





#2. 역시 시장이 최고! - 미니양 


스플리트에서 오전시간은 시장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 찾아간 곳은 넓은 광장에 있는 그린마켓.

생각보다 규모도 크고 많은 현지인들이 이 곳에서 장을 보는 듯 했다. 나도 현지인 코스프레를 해보자며, 여기서 내 얼굴보다 더 큰 빵 1개를 6.5쿠나, 오렌지 5개와 양송이 버섯 500g을 각 10쿠나에 구입했다. 사람사는 곳은 어디든 똑같다더니, 시장이 문을 닫을 때쯤엔 남은 채소와 과일을 떨이로 싸게 팔고 있었다.


 또다시 발걸음을 옮겨 스플리트 구시가지 쇼핑거리 안에 오전에만 서는 피쉬마켓도 들렀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참기 힘든 유혹이... 결국 요리할때 냄새가 많이 나는 생선은 포기하고, 한치로 구입해보기로 했다. 아까 산 양송이 버섯이랑 파스타를 해먹을 요량이었다. 한치 파는 아저씨에게 계산기와 몸짓으로 가격을 물어봤더니, 1kg에 120쿠나. 근데 잠깐 머물 여행자가 1kg이나 뭐하게... 그래서 아저씨에게 200g만 달라고 졸랐다. 겨울 비수기에 놀러온 동양여자애가 조르는 모습이 웃겼는지 생선 파는 아저씨는 웃으면서 25쿠나어치를 담아주더라. 뿌듯하게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풍족한 저녁메뉴를 상상하면서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이 날 저녁메뉴는 한치 양송이 크림 파스타였다.)









#3. 스플리트에서 보낸 한가로운 나날들 - 미니양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노천카페를 많이 보게 되는데, 난 비싼 밥은 잘 안사먹어도 커피는 곧잘 한 잔씩 한다.

된장질처럼 보이지만 커피 한잔에 1유로 남짓이니까 된장질은 아닌 듯. 노천카페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 한 잔은 여행의 피로도 풀어주고, 휴식과 사색의 시간을 보내기에 적당한 것 같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노천카페에는 가족 단위로 나온 현지인들이 많았다. 한 손에는 그린마켓, 피쉬마켓에서 산 비닐봉지 여러 개를 들고. 이렇게 시장을 본 후에 바다를 보며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이들의 여유가 부러웠다.

커피를 한 잔 하고 호스텔 스텝이 알려준 전망대 비슷한 곳으로 갔다. 별로 가고 싶진 않았으나 별다르게 할 일도 없으니까.


 주택가를 한 20분 올라가니 스플리트의 전경이 펼쳐졌다. 올라가길 잘했다 싶은 생각이 조금 들기 시작.

당시에 호스텔 스텝이 숨은 뷰포인트라고 알려줬었는데, 얼마 전에 보니 '꽃보다 누나'에서 김희애가 올라갔더라. 한국인에게는 이제 더이상 숨은 뷰포인트는 아니게 되겠지. 


 전망대에서 내려와 중세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걸어나올 것만 같은 구시가지 골목들을 걸어본다.

다른 유럽의 나라들을 다녀봐도 전통적인 느낌의 거리는 꼭 있다. 우리나라 한옥마을이나 가회동처럼. 그치만 유럽의 경우가 자신들의 전통을 더 잘 보존해가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처럼 서로 경쟁하듯 불을 밝히고, 음악을 있는대로 크게 틀고, 간판의 크키를 키우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제 우리도 조금은 쉬엄쉬엄 차근차근 지켜낼 것은 지켜내면서 가도 되지 않을까?


스플리트 구경을 잘하고 이제 부다페스트로 이동할 준비. 기나긴 야간이동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체력을 비축하기로 했다. 체력 비축은 구시가지에서 좀 떨어진 JOKER라는 쇼핑몰에서 하루종일 시간때우는 것으로. 우리나라 쇼핑몰과 흡사해 가게도 많고 맥도날드, 슈퍼마켓, 서점도 있고, 화장실도 공짜고. 하루종일 잘~ 놀았다.

이제 발칸반도는 안녕~








#4. 아마 외국인의 눈에는 - 고래군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일상에서 보던 것과 다른 것들을 보는 느낌 중의 하나가 '그 나라만의 것'이라는 느낌이다. 전통이나 문화 등의 이름으로 칭하기도 하는 그 느낌은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도 마찬가지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궁금하기도 하다.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만의 느낌은 어떤 것일까? 기와집이나 목조건물은 사실 거의 보기 힘들고, 대도시는 하나같이 근대문물로 가득한 점을 떠올려본다면 어쩌면 자기가 살던 곳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농촌 내지는 좁은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은 달동네, 그리고 재래시장을 보면서 '한국만의 것'을 느낄 것만 같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느끼는 한국의 전통은 민속촌이나 한옥마을, 그리고 고궁(古宮) 등이라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외국인이 느끼는 것과는 다시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서울에 살다 보면 어느새 흙과 나무가 낯선 삶에 익숙해져버리고 만다. 석유화합물이나 여러가지 암석들로 땅을 뒤덮고 사는 대도시의 삶은 사실 한국이 아니어도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서울을 여행하는 외국인이 점점 이해하기 힘들어져가는 것만 같다. 도대체 그들은 서울에서 무엇을 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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