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헝가리 ::: 부다페스트
#1. 새로운 숙소의 경험 - 미니양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서 야간기차를 타고, 그리고는 자그레브에서 다시 기차를 갈아타고 나서야 거의 하루만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부다페스트에서는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여행 자체를 빡빡하게 하는 편은 아니지만, 미리미리 체력 안배를 해주지 않으면 후에 힘들어지니까. 엄마의 체력을 고려해야 했고. 부다페스트에서는 근교 여행 없이 4일을 머물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아파트에 지내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우연히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아파트를 보고 예약을 미리 해놨었다. 아파트 위치도 나쁘지 않고, 4일동안 머무는 동안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방이었다. 호스텔을 전전하며 지냈는데, 욕실 딸린 아파트 방을 보자 엄마와 나는 너무 즐거워했다. 아파트에서 보낸 부다페스트에서의 시간 때문인지 그 후로는 여행숙소로 아파트를 가장 먼저 알아보게 되었다. (Agape Aparthotel 2인 1박 22유로 / 원룸형 방에 부엌, 욕실 포함)
#2. 포기할 수 없었던 부다페스트의 야경 - 미니양
유럽에서 야경으로 유명한 도시 부다페스트.
사실 개인적으로 혼자 여행을 할 때는 야경은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숙소가 야경 뷰포인트에서 가까우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도시의 치안을 고려해서 야경을 볼지 말지 결정을 하게 된다.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역시 '안전'하게 다녀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믿고 보내주는 부모님과 고래군에게 걱정을 끼치면 안되니까.
그렇지만 이번 여행은 엄마랑 같이 간 거니까. '둘이라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저녁을 먹고 야경을 보러 도나우 강변으로 길을 나섰다. 도나우강을 오가는 수상버스를 타면 저렴하게 야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배는 도착했고 배에 올랐다. 배 차장(?) 아줌마에게 요금을 내려고 지폐를 건넸더니, 잔돈이 없으니 동전으로 내란다. 이미 배는 출발해 내릴 수도 없고, 돈을 바꿀 수도 없어 난감해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동양인 남학생들이 다가와 돈을 바꿔주겠다고 했고, 나와 엄마는 무사히 배 요금을 낼 수 있었다. 어찌나 고마운지. 그 남학생들은 말레이시아에서 여행을 왔다고 했다.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배 안에서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낮과는 다른 모습에 즐거워하며 야경을 감상했다.
#3. 정신 바짝 차리자! - 미니양
야경을 만족스럽게 감상하고, 숙소로 걸어 들어가는 길. 멀리서 남자 2명이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사람이겠거니 하며 지나가려는데, 갑자기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냐며 말을 걸더니, 본인들은 경찰이라며 경찰뱃지를 보여준다. 그리고는 여권을 보여달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바짝 차려지며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경찰을 사칭하며 가짜뱃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여권을 빼앗아 돈을 갈취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그래서 난 엄마에게 지갑이랑 여권은 절대 꺼내지 말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전하고, 그 남자들에게 여권은 호텔에 있으니 호텔로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런 상황이 오면 호텔이나 경찰서로 데리고 가서 도움을 청하면 된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권을 가지러 호텔로 가자고 하니, 그 남자들 당황하면서 호텔 열쇠라도 보여달란다. 아파트 열쇠를 건네니, 여행객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인지 비싼 호텔이 아니라 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냥 가란다.
그 순간 어찌나 놀라고 긴장했던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역시 여행에서는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부다페스트의 풍경은 참 아름다웠더란다.
#4. 저기 죄송한데 - 고래군
간혹 지하철역에서 교통카드를 충전하고 있노라면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저기 죄송한데…"
그 소리에 뒤돌아보면, 항상 낯선 이가 나를 보며 그 자리에 서있기 마련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그 사람의 눈에 보이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와, 첫 대면에 항상 꺼내 얼굴에 두르는 가식적인 미소 정도는 아닐까?
"저 죄송한데, 제가 저기 부평까지만 가면 되는데, 지갑을 잃어버려 현금이 없어서요. 조금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의식하기도 전에 그 사람의 행색을 탐색한다. 적당히 깔끔한 외모와 손에 들고 있는 우산, 그리고 등에는 가방을 메고 있다. 어쩌면 정말 지갑을 잃어버리거나 놓고 나왔을지도 몰라.
그러나 나에게는 현금이 없는 상황이다. 당당한 태도와 표정으로 '죄송한데, 마침 제가 방금 교통카드를 충전하면서 현금이 없어서요.'라고 말을 건네고는 돌아선다.
나는 누군가를 돕지 못하는 그 상황이 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어쩌면 그 사람에 대한 의심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른한 평일 오후 지하철역에서 낯선 이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처럼 보이지는 않아.'
'걷기에는 멀지만, 또 지하철을 타면 그리 멀지 않은 어중간한 거리인 부평까지 간다는 점도 어쩐지 의심스러워.'
'지갑을 잃어버린 상황이면, 아는 이에게 전화를 해서 부탁을 하면 되는 것 아닐까?'
'얼마가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조금만 도와달라는 것은 나 이후에도 계속 여기에서 이렇게 할 것이라는 뜻 아닐까?'
등등 나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던 수많은 의심과 생각들.
오래 전, 아직은 어릴 때 지갑과 핸드폰을 잃어버려 곤란했던 때가 기억난다. 그 때 나는 어떻게 했더라? 집에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 기본요금만 있으면 되는데, 그것마저도 없다. 전화기를 잃어버려 지인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다. 한참을 고민했었다. 나에게 누군가가 그랬던 것처럼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볼까?
결국 나는 모르는 이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내가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 눈빛을, 나로서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 고백하자면 나는 두 손으로 개찰구를 짚고 뛰어넘어 지하철을 타고 내렸다. 역무원이 잡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솔직하게 말하고 도움을 받던가 하면 되겠지, 여차하면 역무원에게 전화기를 빌리면 되겠지. 다행인 것인지 아무도 붙잡지는 않았더랬다.
그러고 보면 그 지갑은 참 아끼던 것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