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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Sep 06. 2015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곳, 브라티슬라바

2013. 슬로바키아 ::: 브라티슬라바


#1.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 - 미니양


 부다페스트에서의 휴식을 끝내고,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로 가기로 했다. 

 슬로바키아라... 이전까지는 그냥 체코 근처 어느 나라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다 몇 년 전 포르투갈에서 만난 슬로바키아인 친구를 만나면서 언젠가 다시 유럽을 오게 되면 한 번 가봐야지 생각했던 곳이 되었다. 비록 슬로바키아에서의 시간이 많지 않아 코시체에 사는 그 친구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길에서 마주친 한 사람이 주었던 좋은 감정이 그 나라를 찾아가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보통은 어떤 계기가 되었든 하나의 계기로 인해 '좋다', 또는 '싫다'라는 감정이 생기는 것 같다. 그것이 크든 작든 말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한국사람들에게는 인기있는 나라가 아닌 슬로바키아가 내게는 아주 좋은 나라로 기억되어 있고, 한국 사람들이 유럽을 갈 때 제일 먼저 꼽는 나라 중의 하나인 이탈리아가 내게는 최악의 나라로 기억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좋다, 싫다라는 감정은 역시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인 것이다.


 부다페스트에서 스튜던트 에이전시 버스를 타고 브라티슬라바로 향했다. 밀라노 사건(?)으로 인해 다이어리가 없어 정확히 얼마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프로모션 티켓으로 브라티슬라바까지 8유로 정도에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유럽에서는 대부분 유레일 패스로 이동하지만, 개인적으로 유레일을 선호하진 않는다. 유레일은 아무래도 시간적 제약이 많고, 사람 마음을 급하게 만든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냥 기차, 버스 등 프로모션 티켓을 찾아 저렴하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이동하는 편이다. 부다페스트에서 브라티슬라바까지는 스튜던트 에이전시 말고도 오렌지웨이 버스를 이용해서도 갈 수 있다. 우리는 버스 안에서 음료와 간식 등의 서비스를 받으며, 3시간 후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했다.








#2. 사람이 최고다 - 미니양 


 브라티슬라바는 작은 도시였지만 도시 곳곳에서 아기자기하고 여유있는 느낌이 묻어났다. 특히나 거리 곳곳에 있었던 작은 동상들은 작은 '기분 좋음'들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브라티슬라바에 대한 기억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브라티슬라바에서 마주친 사람들이었다. 동유럽이라 조금은 딱딱하고 무뚝뚝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내가 만난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서 만났던 경찰들. 비록 길을 잘못 알려주어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한참을 헤매게 만들었지만, 그들의 밝은 표정은 미워할 수 없었다. 


 데빈성을 보기 위해 버스를 타고 브라티슬라바 외곽으로 나갔을 때의 일이었다. 데빈성에 오르기 위해 입구까지 갔는데!!! 겨울이고 눈이 많이 와서 데빈성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역시 계획없이 간 여행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 데빈성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너무 추워 커피나 한 잔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데빈성 앞 카페로 들어갔다. 


 동네 사랑방 같은 작은 카페에는 장작이 타고 있고, 그 공간 속에서 동네 사람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엄마와 커피 두 잔을 시켜놓고 몸을 녹이고 있는데, 유쾌한 아저씨가 나타났다. 브라티슬라바 시내로 가는 버스 시간도 다 됐기에 일어나려던  그때, 카페 주인과도 잘 아는 사이로 보이는 그는 대뜸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말도 통하지 않아 카페 주인이 영어로 통역을 해가며 짧은 대화를 나누던 중, 환영의 의미로 우리에게 술을 한 잔씩 사겠단다. 꽤나 독한 술이었지만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내가 거의 두 잔을 다 비우고 일어나 커피 값을 계산하려 했지만 그 아저씨 당신이 우리 커피값까지 다 내겠다며 그냥 가라고 손사래를 쳤다. 카페 나오는 길 커피의 따뜻함, 독한 술의 열기, 그리고 사람에게 묻어나왔던 따뜻함에 나는 더 이상 춥지 않았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혼자 여행하는 경우가 많고, 게다가 호스텔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많은 외국 사람들과  함께할 기회가 많다. 잠깐 스쳐지나가는 인연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들과 잠시라도 부대끼다 보면 아직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다른 이에게 기분 좋았던 동양인으로 기억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낯선 동양인에게 따뜻한 친절을 배풀어줬던 아저씨 :::







#3. 멈춰서야만 볼 수 있는 것들 - 고래군  


 가끔 멈춰서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아이는 길에서 한없이 서럽게 운다. 울먹이며 흔들리는 목소리로 끊임없이 '엄마'를 부른다. 그러나 아이의 엄마는 다정하지 않다. 무서운 목소리로 아이를 혼내며 '주워!'라는 말을 반복한다. 급기야는 아이의 엉덩이를 폭폭 때리며 혼내기 시작한다. 보아하니 세 살 남짓 되어보이는 아이가 길 한복판에 신발과 양말을 벗어 던져놓고는 맨발로 걸어다니며 놀았던 모양이다.


 혼나던 아이는 결국 양말과 신발을 두 손에 주워든다. 아이의 엄마는 여전히 엄한 목소리로 '그만 울어. 이리 와!' 라고 말하며 아이의 손을 잡아끈다. 그런데 엄마의 눈빛에는 분노나 짜증과 같은 감정이 담겨있지는 않다. 아이 역시 울면서도, 또 투닥투닥 맞으며 혼날 때는 엄마를 무서워하며 피하는 몸짓을 했으면서도 이내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엄마를 따라간다.


 문득 길에 멈추어 서서 마주친 풍경이다. 길가에 앉아있던 몇몇 사람들은 나와 함께 그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처럼 나는 그 장면을 기억에 담았다. 그러나 나처럼 멈추지 않은 이들은 아마도 그 풍경을 곧 잊게 될 것이다.

 가끔은 멈춰서야만 비로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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