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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Sep 13. 2015

여행 하루 저녁 값어치의 화장실

2013.  ::: 빈


#1. 세상에서 서로 가장 가까운 수도 - 미니양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와 오스트리아 빈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수도로 기네스북에 올라가 있다고 들었다.

브라티슬라바에서 빈 공항을 거쳐 빈으로 가는데, 버스로 한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정작 빈 공항은 빈보다는 브라티슬라바에서 더 가깝다니... 난 놀라울 따름.


 가뿐하게 빈에 도착해서 예약해둔 숙소로 향한다. 엄마랑 여행을 하면서, 평소 여행할 때보다는 조금 더 좋은 숙소에 머물게 된 것이 사실이다. 비록 엄마는 별 말이 없었지만, 내가 먼저 약간의 배려를 하게 된 것이다. 보다 좋은 숙소를 찾다 보니, 그 대신 중심가와의 거리는 혼자 여행할 때보다 멀어진 것 또한 사실이다. 돈이 한정되어 있으니, 숙소의 질과 중심가와의 거리가 비례하여 커졌던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브라티슬라바에서 오스트리아의 빈까지 버스로 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서로 다른 나라이긴 한가보다. 브라티슬라바에서 버스를 탈 때만 해도 약간 구름이 낀 날씨였는데, 빈에 내리니 짙은 회색의 하늘이 세상을 하얀 눈으로 덮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물리적 거리는 심리적 거리와는 다소 차이나는 것이 사실이다. 브라티슬라바와 빈이 아무리 가깝다 하더라도, 결국 빈의 공기와 브라티슬라바의 공기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행자인 나에게는 그 차이가 피부에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마치 서울과 평양의 물리적 거리가 꽤 가깝고, 게다가 같은 민족의 사람들이 거의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아마 세계에서 서로 가장 멀리 떨어진 두 개의 도시로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2. 여행 하루 저녁 값어치의 화장실 - 미니양 


 엄마와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간 것이 2007년 홍콩이다. 그 전까지는 지인과 함께 가기도 하고, 혼자 여행을 다니기도 했었다. 평소 나의 여행이야기를 듣는 그녀의 눈동자는 이국적인 것에 대한 동경과 미지의 세계를 만나는 흥분으로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런 눈빛 때문에 엄마에 대한 연민과 죄책감이 들었다. 삶이 팍팍해서, 또는 나를 비롯한 가족 때문이라는 이유로 '여행'이라는 것은 자신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엄마의 인생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하지만 많은 여행으로 돈이 넉넉하지 않은 나였기에 늘 기회만 엿보다 결심했다. 엄마가 평소에 늘 입에 달고 살았던 빨간 지붕의 유럽을 보여주리라. 그리고 떠나왔다. 하지만 평생 주부로 살았던 엄마가 지금까지도 고치지 못하는 습관(?)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돈을 써야 할 때에도 쓰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빈에 도착해서 시내를 함께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중심가로 트램을 타고 나와, 훈데르트 바서의 발자취를 따라 빈의 곳곳을 둘러보았다. 저녁으로 접어들고 어느 정도 시간이 되고 나서 나는 '자 이제 본격적으로 엄마에게 빈을 만나게 해주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엄마 화장실 저깄네. 근데 저기 화장실은 돈 내고 가야 해."


 그래도 여행을 조금 다녀본 엄마는 화장실을 돈 내고 사용하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그동안 다녔던 곳과 유럽의 물가 차이가 엄마에게는 거부감에 더해 두려움마저 안겨줬던 모양이다.


"아니야. 무슨 화장실을 돈 내고 가니? 그냥 숙소로 돌아가서 화장실에 갈게."

"안 돼. 지금 호텔로 돌아가면 여기 다시 나오기 힘들단 말이야."


 숙소가 중심가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에 트램이나 지하철을 이용해야만 했다. 거리가 제법 되는만큼 시간도 꽤 걸린다. 하지만 화장실이 급해서 마음까지 다급했을까? 엄마는 계속 숙소로 돌아가겠다고만 했다. 그녀는 이미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 패닉 상태. 결국 빈에서의 하루를 날린 채 숙소로 돌아왔다. 









#3. 빈이 내게 준 생각들. - 고래군


 간혹 하얀 머리의 나이든 여행자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로 여행을 선택해온 사람들도 있지만, 한국 사람의 경우에는 대체로 젊은 시절을 일과 회사, 또는 돈 버는 일에 온전히 소모하고 나서 이제야 여행을 처음 경험해보는 사람들이 많다.


'여행은 젊어서 다녀야지.'

혹은,

'젊어서 일 하고, 나중에 한가롭게 여행 다니면서 살면 되지.'


 상충하는 이 두 개의 가치관은 사실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옳거나 그르다고 할 수 없다. 그저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일 따름이다. 하지만 우리의 부모님 세대인 50대 이상의 한국 사람들은 대다수가 절대적으로 후자에 치우친 삶을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그 가치관을 후대에도 강요하기도 한다.


 숨가쁘게 앞을 향해 뛰기만 하는 삶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그들에게, 멈춰서야만 보이는 것들에 대해 설명할 방법은 없다. 이미 그것을 자신이 스스로 세운 가치관이라고 믿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저 단단한 그것에 흠집내고 균열을 만들고자 시도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그나마인 것만 같이 느껴져 답답할 따름이다.

흥미로운 것은 내가 답답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답답해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 세대 대부분에게 북한이 전쟁도발을 한다는 정부의 '주장'이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 전쟁을 겪고 전후를 살아온 세대에게는 그것이 공포로 다가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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